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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빛 Oct 24. 2022

서른일곱의 사랑, 사십대의 결혼

결혼에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어릴 때는 사랑이 있으면, 비전이 있으면 현재 가진 게 없어도 사람을 만나고 결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나의 주된 관심사는 ‘사랑’이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만난 또래 남자들은 대부분 사회 초년생이었고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않았다. 집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당연했고 만나면서 내 집 마련을 고민했다. 그게 그 때는 당연했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사람을 만날 때는 그 당연한 수순이 자꾸만 내 사랑이 움트는 것을 막는다. 사랑한 후에 조건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 이후에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걸까?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참 사람이 좋다. 그래서 키가 크지 않고, 가진 돈이 별로없는 데다가 나이가 많은데도 남들이 말하는 소위 '좋은 조건'이 아닌데도 자꾸 만나고 싶었고, 그렇게 마음을 키워왔다. 그런 우리에게 제일 큰 장애물은 ‘집’이다. 40대 초반의 그와 30대 후반의 나는 이미 결혼을 하고 집을 마련했어야 하는 그런 위치에, 그런 나이에 있다. 주변 친구들은 20대 후반~30대 초반에 결혼해서 전세를 살다가 아이가 커감에 따라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경제력을 쌓아왔다. 우리는 그 시간 동안 부모님과 함께 살며 차곡 차곡 돈을 모았다. 청약을 넣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미혼이 자신의 힘으로 집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았다. 신혼부부를 위한 특공은 있어도, 나이가 많은 미혼을 위한 특공은 없다. 이 와중에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인플레이션이 겹치면서 물가도 고공행진 중이다.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서 대출에 기대보려 했지만 대출 금리도 곧 상향조정된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사람이 참 좋다. 그래서 이 사람과의 미래를 상상하게 되고 함께 살 행복한 미래를 그려본다. 그러다가 이내 마음이 움츠러든다. 


 우리 둘이 돈을 꾸준히 모은다면,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그게 힘들다면 경제력에 맞추어 그와 딩크를 결정할 수 있을까? 딩크를 결정한 후에 나는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제 나는 무언가를 결정해야 한다. 가진 게 없고, 기댈 곳이 없는 사람이지만 나를 위해주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그의 성실함을 믿고 함께 갈지 아니면 혼자 지금처럼 사는 것에 만족해야할지 모르겠다. 


 나보다 잘 사는 사람들을 보면 욕심이 한도 끝도 없으니 내가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려 부단히 애를 쓰지만, 마음을 내려놓고 지금 상황에 만족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쉬워보이는 선택이 나에게는 어렵다. 예전처럼 아무생각없이 사랑에만 빠지고 싶다. 사랑에 빠진 이후, 조건에 대한 고민 때문에 괴로웠던 때가 지금보다 훨씬 선택이 쉬웠다. 괴로워하면서도 내가 어떻게든 해보면 되겠지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다양한 기회를 노려볼 수 있었다. 이직이든 전직이든.


 그렇게 불평 불만을 쏟아내던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싫은 것인지. 나는 확실하게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좋은 사람이라 평했다. 친구가 이야기했다. "예전에 너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네가 돈을 벌어오면 된다고 했었어. 대신, 성격이 잘 맞고 온화한 사람이면 좋겠다고."


 그랬다. 그렇게 말했던 것도 분명히 나다. 나이가 들면서, 겁쟁이가 되어서 그렇지 어린 시절 나는 그런 호기로움이 있었다. 그리고 돌아보았다. 내가 가진 자산, 커리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없나? 서른 일곱의 나에게 필요한 결혼의 조건은 용기인 것 같다. 나를 좀 더 내려놓을 용기, 이 나이에 변화할 미래를 맞이할 용기. 커리어가 흔들릴까봐, 내가 모아 놓은 돈을 모두 털어버리게 될까봐, 우리 부모님만 남겨질까봐 등등. 나이가 들면서 잃어버릴까봐 두려운 수 많은 자산을 양산해냈다. 돌이켜보면, 사실은 그것이 성장이었다.


 성장의 부작용이 두려움인가보다. 나는 두려움을 이겨내며 스스로를 다그쳐야 한다. 곁에서 함께 걸을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한발자국 내딛을 것을 다짐한다. 사랑이 결국 나를 열정적이었던 20대로 돌려놓는 것 같으니 어쩌면 현실과 사람과 타협하지 않고 내 마음에 흡족한 사람을 기다린 보상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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