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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빛 Sep 12. 2022

나는 사랑을 이제야 알아간다.

30대 후반에도 사랑을 새로 시작된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라는 구절을 읽었던 적이 있다. 그 사람의 삶이 다가오는 것임을 알기에 사람이 무거웠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그를 알아갈 때도 매한가지여서 나는 늘 한발자국 뒤쳐져 있었다. 인플레이션으로 세상에 대한 걱정이 많아지자 사랑에도 나는 소극적인 사람이 되었다. 예전에는 늘 내 마음에 사랑이 넘쳐서 표현하지 못해 안달이었는데, 나이가 들자 어찌된 일인지 사랑을 표현하면 큰일이나 나는 것처럼 내일 당장 결혼이라도 하자고 누군가 달려들 것처럼 사랑의 표현이 무서워졌다.


 표현하는 것이 두려워지면서, 나는 내 사랑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 이렇게 표현하기가 힘든걸까? 그렇지만 함께 밥을 먹을 때, 나를 보며 웃을 때, 내가 아플까봐 걱정할 때 그 사람이 좋았다. 잘생겨보였고, 주변에 어떤 남자들보다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아프면 약이라도 사다 주고 싶었고, 더운 날이면 만나고 싶었다. 맛있는 걸 보면 가족보다 그가 먼저 생각났으니 이 정도면 사랑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우습게 보일까봐 약을 사다주고 싶은 마음을 눌렀고, 가족보다 그를 먼저 생각하고 있음을 들킬까봐 노심초사했다. 사랑임을 인정하면 지금까지 유지해 온 내 삶이 무너질 것 같았고,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그와 결혼 이야기를 하다가는 당장이라도 경력이 단절된 유부녀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런 두려움들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그를 몰아부쳤다.


"나는 결혼을 하더라도 지금의 내 일을 하고 싶어. "

"아이를 갖더라도 내 일을 희생하고 싶지 않아."

"육아휴직은 남녀가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나의 생각을, 두려움을 단호하게 표현했다. 이런 내가 싫으면 네가 떠나가라는 마음으로 매섭게 그를 채찍질했다. 곧 나가떨어지면 어쩌나 무서워하면서도 나는 나의 일이, 지금까지 유지했던 나의 삶이 중요했기에 거침없었다. 그런데 그는 굳건했다. 싸우고 나서도 헤어짐의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고, 육아는 같이 할 수 있다고 믿음을 주었다. 일을 하는 내 모습을 멋있다고 해주었고, 함께 살 길을 찾아보았다. 매주 토요일 출장을 가느라 바빠서 연락을 못하고 한달에 두번도 간신히 시간을 내는 나에게 그는 단 한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싫어서 이직을 했고 그래서 이전보다 어려운 업무에 시달리느라 힘들텐데도 나를 매주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이야기한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따뜻하고, 손을 잡고 걸으면 행복하다. 그런 사사로운 행복이 나의 두려움을 조금씩 보듬어준다. 물론 나도 안다. 그의 마음과 현실이 다를 수 있음을. 그는 육아휴직을 2년 쓸 마음의 준비가 되었어도 그가 다니는 회사는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을 게다. 멋있게 일을 하는 나 때문에 때로는 저녁을 혼자 먹어야 하는 외로움이 그는 싫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그는 노력하고 있었다. 존중하려는 마음의 노력. 나는 내 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날이 서 있을 때 그는 자신의 것을 포기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도 날 선 말을 내뱉고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이 적적할까봐 그는 나에게 전화를 걸었고, 내가 와줘서 덜 아팠고 내가 가서 더 아프다고 칭얼거렸다. 돌아오는 길에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즈막히 아이를 낳아서 육아로 고생하는 나를 떠올렸다. 따뜻한 그의 집이 나의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 가진 것이라고는 따뜻한 집안뿐인 그 사람은 나를 위해 기꺼이 그 따뜻함을 나누어줄 것이다. 나는 30대 후반이 되면 나이는 많지만 경제적인 요건이 갖추어진 평범한 남자와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만난 사람은 나이에 어울리는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다. 성실하게 현금을 모았지만 재테크는 못한 사람. 그런데 나는 제법 행복하다. 손을 잡고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데에서 기쁨을 느낀다. 위로를 받는다.


이제 나는 내가 가진 것을 그 사람과 나누어보려 한다. 일을 좋아하는 내가 돈을 더 열심히 벌어서 이 사람과 함께 걸어나가면 된다. 나의 가치관을 지지해주고, 내 생활을 지지해주는 사람에게 힘을 얻어서 삶을 함께 일구어 나가면 된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이유는 내 삶을 좀 더 굳건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재력이 그걸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그와 함께 '사랑'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가봐야겠다. 나에게 힘을 주는 사람에게 좀 더 마음을 열어보아야겠다. 힘을 빼고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부터 시작해야겠다. 30대 후반의 사랑찾기는 내 마음의 고삐를 느슨하게 푸는 것부터 연습이 되어야 하는 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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