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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Apr 20. 2024

* 행간(行間)을 읽어야지 (2024.04.20.토)*

행간(行間)을 읽어야지 (2024.04.20.) *     


 - 행간(行間)을 읽어야지.     


   출근길에 듣는 라디오 방송 A 프로그램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 요즘 청취율 조사를 하고 있으니, ‘02’로 시작하는 전화가 오면, 받아 주셔서, 저희 프로그램을 듣는다고 말씀해 주세요.     


   청취자들은 이런 답변을 보내왔다.   

 

 - 저장되어 있지 않은 전화는 받지 않는데, 청취율 조사일지도 몰라서 모르는 전화번호인데도 받았더니, 부동산 전화였어요.

 - 받으려고 며칠 동안 내내 기다렸는데 한 번도 오지 않던데요?     


   퇴근길에 듣는 B 방송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 청취율이 0인 저희 프로그램에서~~     


   두 프로그램 모두 내가 좋아해서 매일 듣는 프로그램인데, 나 또한 청취율 조사 전화를 받은 적도 없고, B 프로그램의 청취율이 0이라는 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A 프로그램 진행자가 이렇게 말했다.     


 - 이 청취율 조사는 도대체 누가 시작했을까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라디오를 켜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라디오 끄는 일을 가장 마지막으로 하는 나로서는 ‘라디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를 늘 생각한다. 일주일 동안 TV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전혀 없는 나에게 라디오는 정말 생명줄과 같은 매체다. 늘 무언가를 들으면서 음악이, 어떤 문구가 또는 누군가의 말이 머릿속에, 마음에 새겨지고 깨닫게 되며 배우게 되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무엇보다 한정된 프로그램 시간 안에 그 시간에 진행해야 하는 것들을 남김없이 다 보여준다는 것이 좋다. 또 다음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명쾌하고 또렷하게 직접 들려준다는 것도 좋다. 아마 보이지 않아서일까. 보이지 않으니 귀를 더 쫑긋하게 되고 ‘소리’로서 ‘보여준다’라는 것이 정말 좋다.    

  

   식사 중에 선생님들과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 요즘 아이들은 드라마를 제대로 못 본다고 해요.

 - 30분을 못 넘긴다네요.

 - 그러니, 2시간 넘는 영화는 당연히 못 보죠.

 - 제 동생도 O플릭스에서 드라마를 안 보고, 짧은 영상만 보더라고요.

 - 길게 흘러가는 드라마를 견디지 못하겠대요.

 - 누가 누구랑 결혼하는지 결론만 알면 된다네요.

 - 책은 어떻게 보는 걸까요?

 - 그러니, 책도 두꺼우면 안 되는 거죠.     


   ‘쇼츠(Shorts)’라는 단어가 있다.     


 - 짧은 영상 보통 1분 이내 ~ 최대 3분 안의 짧은 영상     


   ‘엑기스’만 모아놓은 짧은 영상에 환호하는 요즘 세대가, 2시간이 넘는 영화의 흐름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 C가 말했다.     


 - 나도 어느 순간 쇼츠를 보고 있더라고요.

 - 잠깐 본 것 같았는데, 1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 중요한 건, 보고 나서도,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는 거죠.     


   3분의 영상 안에 서론-본론-결론을 다 넣는다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어서, 중간중간의 온갖 과정을 생략하고 좀 더 자극적이고 강렬하게 결론만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 요즘의 트렌드라고 하니, 이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고 교육해야 하는 걸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수업은 50분이니까.     


   오래전 어떤 글을 읽고서 D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이게 E라는 뜻이죠?

 - 행간을 읽어야지.

 - 그럼, F라는 뜻인가요?

 - 행간을 읽으라고.     


   무언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어야 제대로 이해하는 나로서, 글과 글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고 숨어있는 메시지를 읽는다’라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행간을 읽는 것도 잘 못하니, 사람의 어떤 행동을 보고서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것은 이런 의미이고, 저것은 저런 의미였을 텐데, 한참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나 할까. 그것도 새 발의 피정도를 깨닫는다. 휴. 그래서 D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 왜 행간을 읽어야 하나요? 눈에 보이게 다 적어주면 좋을 것을!     


   2시간 동안 단지 ‘소리’로 의미를 전달하는 라디오에는 환호하지만, 3분의 쇼츠에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행간을 읽어서 숨어있는 뜻을 알아내야 하는 것에는 또 버거워하는 나는 여전히 옛날 사람일 뿐만 아니라 똑똑한 사람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무엇이든지, 귀에 똑똑히 들리고 눈에 선명하게 보이면 좋겠는데. 귀에 들리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 내고 이해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귀에 다 들리고 눈에 다 보여도 엉뚱하게 오해하게 되는 불투명한 세상인데….     


   아, 차라리, 3분짜리 쇼츠가,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더 맞을까?     


***********************


*** 예전 같으면 3박 4일의 주제별 체험학습 기간 동안 사진이나 동영상을 많이 찍었을 텐데, 제대로 정리하기에 시간이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잘 찍지 않는다. 또 전문적으로 잘 찍는 분들이 많아서 그분들에게서 받는 것이 더 수월하기도 하고.     


   이번 주제별 체험학습을 다녀온 뒤 3박 4일의 추억을 담은 사진 동영상을 G에게 받고 나서 큰 감동을 받았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그 순간들을 엑기스로 모여진 사진으로 다시 한번 보니 그 시간이 다시금 기억나면서 감사함이 몰려왔다.     


   3박 4일을 27분으로 모아놓으니, 행복한 순간만 담겨있었고, 힘들었던 것은 아예 기억도 나지 않았다.  

   

   우리의 일생을, 우리의 인생을, 어떤 한편의 영상으로 모아본다면, 아마, 이런 느낌일까….    

 

   힘듦, 슬픔, 절망과 아픔은 사라져서 기억도 안 나고, 결국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씀처럼, 선하고 아름답고 부족함이 없이 꽉 찬, 완벽한, 감동과 감사가 넘치는 어떤 그림, 음악 또는 글로 완성이 될 수 있을까.     


#행간   #청취율   #출발_FM과_함께   #당신의_밤과_음악   #라디오   #쇼츠   #Shorts   #합력하여_선을_이룬다   #여호와는_나의_목자시니_내게_부족함이_없으리로다   #완성   #일생   #인생   #동영상     


https://zrr.kr/BO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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