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새해를 맞으며
한강에서 맞이한 새해 해돋이
어느새, 새해가 떠오른지도 열흘이 넘었다. 아! 저게 갑진년 새해구나~~ 새벽 찬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던 새해가 아니 벌써 열 번이나 더 얼굴을 내밀었다니... 눈 깜빡할 새, 헌 해가 되었네...
지난 연말, 아내의 병원 정기검진일도 있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온 가족이 함께 해돋이를 하자고 해서 하루 연차를 써가며 서울로 올라갔다.
온종일 진료대기 하느라 몸과 마음이 피곤했지만, 의사에게서 결과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마음 편하게 아들의 피앙새를 만나러 갔다.
지난해 여름, 아들이 결혼할 상대라며 집에 데려와 인사를 시켜주더니, 늦가을에 사돈 될 가족과 상견례를 했다. 남들은 어려운 자리라고 하지만, 그날 우리는 편하게 식사하는 자리처럼 여겨졌다. 가족분위기가 화목한 거 같아 좋았다. 저런 가정에서 자랐으면 괜찮겠다 싶었다.
사위는 장모 사랑이라고, 벌써부터 아들은 예비 장모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아들의 입맛에 맞게 김장을 해서 보내왔다고, 은근슬쩍 지나가는 말투로 자랑을 했다. 그래, 장모 사랑 많이 받으면 좋지~~~
처음에는 서먹하고 어색했으나 그래도 세 번째 만나니 반갑고 가족이 된 기분이 들었다. 오늘 겨울방학식을 하고 왔다며 우리를 보며 밝게 웃어주었다. 떠들썩한 식당에서 우리도 열심히 웃고 떠들며 우리만의 즐겁고 행복한 연말 저녁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저번에는 미처 몰랐는데, 이번에 자세히 보니 아들의 피앙새가 정말 예쁘게 생겼다며 나중에 나에게 소곤거렸다. 옳거니, 꽃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예쁘지... 세상에 제일 예쁜 꽃은 바로 내 품에 있는 꽃이란다.
송구영신. 말 그대로 묵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마음과 각오를 가져야 한다며 아내는 또 이벤트를 마련했다. 다이소에서 사 온 풍선을 불어 거기에다 자기가 버리고 싶은 걸 적으란다. 나는 뭘 버려야 하는가... 나이가 들어감에 하나 둘 생기는 질병들, 건강에 좋지 않은 스트레스들... 아이들과 아내도 저마다의 나쁜 것들을 풍선에다 적어 딸이 살고 있는 집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이것들을 다 버려야 한다며...
차가운 밤공기와 찬바람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버려야 할 것들이 적힌 풍선들을 터뜨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모두모두 가거라! 나쁜 것들아~~"
그리고, 우리는 집으로 들어와 보신각 타종행사를 보며 새해를 맞이했다. 뎅! 뎅! 뎅! 뎅... 갑진년 청룡의 해라고... 올해 우리 가족에게 좋은 일만 있으라고... 아, 벌써 좋은 일은 있다. 아들의 박사학위 취득과 어여쁜 가족이 한 사람 더 생기게 되었으니... 아마 좋은 한 해가 될 거 같다...
딸이 계획했던 아차산 해돋이는 전날 내린 눈 때문에 불가능하여 가까운 한강 노들섬으로 가서 새해 해돋이를 보자며 세수도 안 하고 꽁꽁 싸매어 한강으로 갔다.
노들섬 가까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두 새해를 바라보며 저마다의 소원을 빌러 왔을 게다. 생각보다는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 춥지는 않았다. 가족들끼리, 연인들끼리, 혹은 친구들끼리 군데군데 모여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기상예보에서 조금은 날이 흐려서 해가 보일지 말지 확실치는 않다고...
무엇을 빌어야 하나... 나는 뭘 비는데 익숙하지 않다. 해는 일출 예정시간이 지나서도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아, 날씨가 흐려서 해가 보이지 않는가 보다.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올해도 새해를 못 보게 되었다며 실망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동녘 하늘은 점점발가오고 있건만, 해는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아마도 저 흐린 하늘 어딘가에 이미 떠올라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해돋이를 보지 못한 실망감에 아쉬운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애타게 하늘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새해가 환하게 얼굴을 내밀어주었으면 하는 게 모두의 첫 번째 소원일 게다.
잠시 후, 많은 사람들의 소원은 정말 이루어졌다. 새해가 짜잔! 하고 얼굴을 내밀어준 것이다. 기쁜 얼굴로 두 손 모아 비는 이들도 있고, 새해를 보게 된 것이 마치 소원성취라도 한 듯이 소리치는 이도 있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올 한 해 다 잘 되기를 비는 이도 있었을 게다. 나도 가만히 해를 바라보며 한 마디 했다.
"좀 빨리빨리 다닐 것이지... 아무튼 올해도 잘 부탁한다~~ 다른 거 필요 없다. 그저 우리 가족, 내 주변 모든 이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기를 바란다..."
돌아오는 길에 식당에 들러 따뜻한 떡곰탕 한 그릇씩 먹으며 한 해를 시작했다. 4년 전인가, 제부도로 해돋이를 갔다가 새해는 보지 못하고 진눈깨비만 맞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해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휩쓸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우리가 새해를 보지 못해서 그렇다고 농담 삼아 말하곤 했었는데, 올해는 밝은 새해를 만나 소원을 빌었으니 우리에게 좋은 해가 될 거라고 믿어본다.
갑진해야, 이름처럼 비싸게 굴지 말고 우리 모두의 소원을 이룰 수 있게 해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