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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Jun 28. 2024

텃밭에서 만난 친구들

친구 네 텃밭을 다녀와서...

             텃밭에서 만난 친구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장맛비가 조금은 약해진 틈을 타서 우리는 우산을 쓰고 텃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친구 부부가 가꾸는 온갖 채소들을 들여다보며 한 마디씩 아는 체를 했다.  


  "야아, 이거 수박이네! 이거 언제쯤 다 익냐? 그때 다시 와야겠다..." 

  "여기 가지도 있다~~ 오이도 있고, 저건 또 뭐야?" 


  정말 텃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고추, 가지, 마늘, 당귀, 상추, 고구마, 호박, 복수박, 참외 등등... 다 기억도 안 날 정도로 가짓수가 많았으니... 게다가 한쪽에는 적지 않은 수의 키 작은 단감나무들이 탁구공 만한 감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한 500 평 된다고 하니, 텃밭이라고 하기엔 좀 큰 게 아닌가...


  대학생이던 시절, 우연찮게 함께 모였던 친구들이 '토막회'라는 이름으로 자주 모였다. 토막회, 말 그대로 토요일마다 막걸리 마시는 모임이라고... 대구 시내 공주 식당을 비롯하여 그 주변의, 학생들의 빈약한 주머니로 갈 수 있었던, 그래도 안주가 10 여가지가 넘게 나왔던 술집들을 섭렵하며 막걸리 주전자에 소주와 보라색 써니텐을 섞고, 어설프게 독재타도를 외치며 청춘을 불살랐던 시절에 만났던 친구들... 


  하지만, 뜨거웠던 청춘은 세월을 따라 식어갔고, 친구들은 저마다 살 길을 찾아 여기저기 직장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으니...    


  모두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중년도 훨씬 넘고, 이제는 장년이라고, 가끔씩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젊은 배달총각에게 "어르신"이라고도 불리게 된 우리는 정말 이제 텃밭에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는지...     

  지금은 각자 다른 모습으로, 다른 곳에서 살지만, 오늘처럼 한데 모여 저 텃밭의 채소들처럼 다시 새파란 청춘을 찾은 듯이 착각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느 친구의 말대로,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이 얼마나 즐겁지 아니한가...  한 친구는 아침부터 차를 몰아 인천에서 먼 길을 달려오기도 했으니... 


  우리는 가볍게 텃밭 구경이나 하고, 삼겹살이나 구워 소주나 한잔 하려고 했더니만, 뜻밖의 거나한 술상이 텃밭에서 땄다는 여러 채소들과 맛있게 보이는 음식들을 머리에 이고 컨테이너 하우스 방안에 턱 하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공기 좋고, 추적추적 비까지 내려 분위기가 더 좋은 자연을 내다보며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텃밭주인인 친구는 원래 농사꾼이 아니다. 구미에서 회사를 다니다 정년퇴직을 하고 소일거리 삼아 텃밭을 장만했다고 한다. 사실 친구는 농촌출신이 아니고, 그의 아내가 친정이 시골이라 대부분의 밭일은 아내가 다 한다고 한다. 그는 뒤만 따라다니며 참견이나 한다고... 


  나이가 들면 도시에서 머지않은 곳에 조그만 텃밭이나 하나 장만해 상추도 심고, 방울토마토나 키우고, 고추나 키우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며 살아보고 싶다는 것이 도시민의 작은 바램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마음에 한가로움과 여유를 가지게 해주는 일일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지금 그런 생활을 하는 친구가 아마도 부러웠을 게다...  


  사람은 한평생 밭을 가꾸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먹을 식량을 얻기 위해 씨를 뿌리고, 자식을 키우고 가르치기 위해 뙤약볕 아래서 김을 매고, 소나기 지나간 뒤에 쑥쑥 자라나는 잡초들을 뽑느라 게으름 피울 새도 없이 일을 해야 한다. 밭주인이 얼마나 밭에 정성을 들였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는 건 당연할 게다. 우리는 그렇게 저마다의 밭에서 열심히 일을 했고, 수확의 기쁨과 보람된 결실을 거두게 되었을 게다. 


  대부분의 친구들도 이제는 작은 텃밭이나 가꾸며 살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예전처럼 큰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할 일이 없어 심심하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막상 저 텃밭을 가꾸고 있는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그저 그것은 손쉬운 취미생활은 아니라고... 저 비가 그치면 금세 텃밭에는 온갖 잡초들이 말 그대로 우후죽순처럼 자라난다고 한다. 그러면, 텃밭 주인은 또 열심히 잡초를 뽑아야 한다고... 우리는 겉만 보고 풍월이나 읊었으니... 배짱이 같은 친구들이 개미의 텃밭을 보며 부러워하는 모습이라니...


  사실 말이 텃밭이지 정말로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다. 여러 조건이나 환경이 맞지 않거나, 화분의 화초도 하나 제대로 못 키우는 나의 실력으로는 그저 그림의 떡일지도 모른다. 


  마음에도 작은 텃밭을 하나 가지고 살면 좋겠다. 살면서 힘든 시간을 지나갈 때, 세상 모든 일 다 잊고 그냥 홀로 가만히 앉아 스치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조그만 의자 하나 가져다 놓을 수 있고, 하얀 스케치북에다 예전에 미처 그리지 못했던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주 익숙한 음악소리에 눈을 감고 흥얼거리기도 하고, 텃밭에 핀 예쁜 꽃을 찾아 날아온 나비를 보며 웃음 지을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있는 마음의 텃밭을 가꾸며 살아가면 좋지 않을는지...


  가느다란 장맛비는 온종일 초록의 텃밭을 적시고, 저마다 생김새가 다른 텃밭 채소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들은 세상살이 시름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고, 반가운 만남의 잔을 높이 들며 이렇게 외쳤다...


  "반갑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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