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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Jun 19. 2022

사느냐 죽느냐...

독서토론

               사느냐 죽느냐...



  예전에, 한 달에 한 번, 도서관  독서토론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 평소 이리저리 책을  적지 않게 읽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내용도 그렇고, 느낌도 그렇고 감동을 가졌던 순간들도 차츰 다음 독서를 통해 잊어버리고 만다. 


  독서토론회에 참석하다 보니 예전의 독서보다는 많이 다른 것을 알게 되고,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나 놓쳤던 내용들을 새삼 깨닫게 되고 타인의 느낌을 통해 내 생각의 영역이 넓어지는 거 같아 좋았다.


  한 번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을 읽고 와 열띤 토론을 했다. 물론 500년 전의 고전이고, 시대적 배경도 덴마크 왕가의 사건을 다루었지만, 셰익스피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거 같다. 비록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희곡 <햄릿>은 내가 고교시절에 처음 읽어보았다. 당시에는 문학전집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나오다 보면, 멀끔하게 차려입은 아저씨가, 그때는 햄릿처럼 약간은 우수에 젖은 눈빛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학교 담벼락 아래 빛이 반짝반짝 나는 양장본 하드커버의 책들을 늘어놓고 하교하는 학생들에게 문학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었다. 


  한국 단편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 등등... 한 마디로 고급스러워 보이는 책들이 운동장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축구하고 나오던 우리의  모습을 비아냥거리듯 올려다보고 있었다. 

  "교양하고는 거리가 먼 너희들은 저리 비켜라~~ 훠이~~" 

  사실 그때는 지금처럼 논술이니 자술서니 하는 입시제도도 아니었으니 취미에도 없는 문학작품을 읽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렇다고 내가 책을 멀리했다는 것은 아니고...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헤밍웨이, 셰익스피어, 단테, 앙드레 지드, 마가렛 미첼, 카프카...  한 마디로 세계문학의 걸작들이 망라된 전집이었다. 그 책들을 사지 않으면 마치 내가 학생이 아닌 것처럼, 내 머리통에 똥 밖에 들어있지 않은 것처럼, 앞으로 지식인들의 대열에서 뒤처질 거 같은 막연한 느낌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나는 그 햄릿처럼 생긴 아저씨의 꼬임에 넘어가 스무 권짜리 전집을 사고 말았다. 물론 내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10개월 할부로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나는 용돈의 대부분을 할부금 내는데 지출하며 학창 시절 내내 허덕거리며 살아야 했다.


  그때, 나는 햄릿을 처음 읽어보았지만, 아직 문학에 그다지 조예도 없었고, 어린 나로서는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던 거 같다. 워낙에 유명한 희곡이니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것도 있어 대충의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토론을 위해서 나는 다시 한번, 아니, 서너 번은 읽어보았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더라도, 고전을 다시 읽는 맛도 새로운 느낌과 미처 예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책은 여전히 같은 책이고, 읽는 사람도 여전히 같은 사람인데, 다른 것은 읽는 사람의 나이가 달라져 있고, 읽는 시대나 상황이 달라져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일체유심조...  바라보는 마음에 따라 대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말...


  햄릿의 내용은 부왕을 죽이고 왕비와 결혼하여 왕위에 오른 숙부에 대한 복수극이다. 복수를 위해 사랑하는 여인 오필리아를 이용하고, 숙부를 단죄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결국 오필리아의 오빠 레아 티스와의 결투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죽고 만다. 주인공 햄릿마저 죽어서 비극으로 끝이 난다.


  가만히 보면, 요즘도 이러한 유형의 스토리들이 넘쳐나고 있는 거 같다. 드라마의 대부분이 복수와 사랑과 갈등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들추어내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인간들의 욕심이 만들어낸 비극이 아니던가. 그 비극 속에서 찾아낸 작은 희망과 행복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는지...


  토론에서 나온 말 중에서 "햄릿이 과연 우유부단한 인물인가?"가 도마 위에 올랐다. 


  희곡의 내용상, 햄릿은 부왕의 복수를 위해 치밀하고 계획적이었다.  결투에서도 과감히 칼을 빼들었고, 대신 폴로니어스를 죽이고, 마지막에 왕도 자신의 칼로 죽인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대사에서 우유부단함을 보았을까? 돈키호테보다야 훨씬 과감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유부단하지는 않다는 게 그날 토론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회원들 생각이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여전히 권력을 탐하고, 욕심을 부리고, 사랑을 갈구하고, 배신을 하고, 상대를 이용하고, 복수를 하고, 또 복수를 되갚아주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인간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는 것인가...


  그러고 보면, 용서란 말이 말처럼 쉬운 것은 분명히 아닌 거 같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런 마음을 가지려 시도는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상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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