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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Jun 06. 2022

통기타, 잊었던 나의 애인

먼지에 쌓였던 지난 날들...

             통기타, 잊었던 나의 애인...



  뒷 베란다에서 물건을 찾다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구석에 소리 없이 처박혀있는 기타를 발견했다. 클래식 기타였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손이 가지 않았는지 6번 줄이 끊어진 채로 마치 쓰레기처럼 버려져있었다. 


  "왜 나를 잊었습니까?" 

  기타는 마치 내게 핀잔을 주는 것처럼 뿌연 먼지를 풀풀 날렸다. 나는 행여 먼지가 입에라도 들어갈까 고개를 돌리며 먼지를 털어냈다. 

  "푸우~ 켁켁..."


  나는 물건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기타를 끌어안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랜만에 퉁겨보는 기타 줄은 늘어져 죽어가는 소리를 내었다. 음들을 제대로 맞추었지만 6번 줄이 끊어져 없으니 어차피 제대로 연주는 되지 않았다. 나는 오래간만에 듣는 기타 소리가 듣기 좋아 한참 동안 코드를 잡아가며 퉁겨보았다.


  고1 때였을 것 같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가 아주 그럴싸한 포옴으로 기타를 퉁기며 변성기의 쉰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것을 보고는 내심 놀랐다. 그리고 평소 별 볼일 없던 놈이 그날은 정말 멋있고 대단하게 보였다.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양희은, 박인희, 은희... 당시의 내가 알던 가수들은 거의 대부분 통기타를 안고 노래를 불렀다. 

  어쩌다 길거리에서 통기타를 어깨에 메고 가는 사람을 보면 꽤나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기타는 단지 악기가 아니라 하나의 액세서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 틈틈이 모아두었던 용돈을 몽땅 털어 당장 악기사로 달려갔다. 학생이 뭐 그리 돈이 많았겠는가... 몇 군데의 악기사를 돌아다니다 겨우 내가 가진 돈에 맞는 하늘색 통기타를 살 수 있었다.


  아직 도레미도 칠 줄 몰랐지만, 나는 마음이 붕 떠서 마치 벌써 포크가수라도 된 것처럼 신이 나서 집으로 달려왔다. 내가 들고 들어간 통기타를 보고 아버지는 눈이 둥그레졌다가 이내 날카롭게 찢어졌다. 

  "그기 뭐꼬?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쯧쯧.."


  그날부터 나는 시간만 나면 기타를 끌어안고 살았다. 서점에서 사 온 초보 통기타 교본을 펼쳐 놓고 딩가 딩가 줄을 퉁겼다. 

  하지만, 내가 퉁기는 기타 소리는 음악이 아니라 숫제 소음일 수밖에 없었으니... 식구들은 시끄럽다며 내 방을 지날 때마다 다들 한 마디씩 했다. 하긴 내가 들어봐도 그리 듣기 좋은 음악은커녕 아름다운 소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꿋꿋이 기타를 끌어안고 열심히 독학을 했다. 아, 이런 정성이면 전교 1등은 했을 텐데...


  시내에 기타 교습학원이라고 있었지만, 나는 학원비까지 낼 형편은 아니었다. 더구나 공부는 안 하고, 딴짓이나 하는 아들을 못마땅해하는 부모님에게서 학원비를 받아낸다는 것도 거의 맞아 죽을, 위험천만한 일이었으니... 오로지 독학으로 기타를 배워야 했다.


  손가락 끝에서 피가 맺히더니 결국 스멀스멀 피가 배어 나왔다. 한 마디로 피가 날 정도로 나는 열심히 기타를 쳤다. 아, 소리꾼이 목소리가 터진다더니, 나도 드디어 손가락이 터지는 득음의 세계에 도달하는 걸까... 피가 나서 쓰린 손가락 끝에 반창고를 붙여가며 더운 여름날인데도, 낮에는 소리가 새어 나갈까 방문을 꼭꼭 닫고, 밤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서 연습을 줄기차게 했으니... 아마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은 없었던 거 같다...


  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 준 꽃반지 끼고...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


  피나고 땀나는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 드디어 웬만한 노래는 악보를 보고 기타 치며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가슴 뿌듯한 성취감, 그야말로 기타 치며 노래하는 자신이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아~ 요즘 아이들 말로 드디어 '자뻑' 경지에 도달했으니... 


  이렇게 애써 배운 나의 기타 실력은 나중에 여름 캠핑 가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계곡으로 물놀이 갈 때면, 나는 무거운 배낭에다 하나 더 나의 애인인 기타를 메고 갔다.

  밤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둘러앉아 노래를 부를 때, 나는 기타를 치며 반주를 했다. 낮에는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이웃의 여학생들이 하나 둘 관심을 보이다가, 이내 함께 둘러앉아 박수를 치며 노래를 함께 불렀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 드려요...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자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


  우리는 산에서 바다 노래를 했다. 기타 소리에 맞춰서, 박수소리에 맞춰서, 밤새도록 노래를 불렀다. 모닥불이 꺼질 때까지... 별이 하나 둘 질 때까지...


  대학에 들어가서, 나는 당시 한참 인기였던 모 방송국 대학가요제에 한번 나가볼 거라며 친구와 둘이 온종일 하숙방에 처박혀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대학을 간다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로, 당시 대학생들에게는 대학가요제는 꿈이요 희망이었다. 


  결국, 우리는 대학가요제 예선도 한번 못 가보고 그만두어야 했다. 뭐, 작곡 실력이 있어야지... ㅠㅠ


  살아가면서 가끔씩은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나는 기타를 잡고 앉아 기억나는 음악들을 퉁겨보곤 한다. 그러면 세상사에 찌들었던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며 다시 젊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대학시절 옛 친구들의 얼굴도 생각나고... 

  좋았던 한 때도 떠오르고...


  언제 기회를 봐서 끊어진 6번 줄을 갈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기타를 제자리에 놓아두고 베란다를 나왔다. 나는 어느새 머리카락이 희끗한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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