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편해하는 말

괜찮다는 말과 공감해주는 것

by 황진혁

나는 책에서 만나는 '괜찮아'라는 말이 다소 불편하다. 작가로서, 저자가 독자의 상황이 괜찮은 일인지 안 괜찮은 일인지 일일이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거기에 대고 괜찮다는 무책임한 위로를 보태는 게 과연 괜찮은 일인지를 잘 모르겠다.


조심스럽게 꺼내는 말이지만 심지어 어떤 작가는 그런 것이 별로 의미 없다는 걸 안다고 하면서도 "그런 말을 써야 책이 잘 팔린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한 적도 있다.


대개의 경우, 저질러진 일은 해결하지 않으면 괜찮아지지 않는 게 맞다. 다만 무턱대고 괜찮을 수는 없어도 사람은 저질러진 일을 수습할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괜찮아지도록 용기내어 수습하고 추스르면 그만이다.


괜찮아라는 말 다음으로 불편한 말은 '공감해주다'라는 말이다. '공감하다'나 '공감되다'가 아니라 '공감해주다'라니?! 누군가의 말을 공감하는 것이 불편한 게 아니라, '해주다'라는 말의 의미 자체가 불편하다는 거다.


공감가지 않는 말을 억지로 공감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힘든 일이고 상대방에게도 얼마나 가식적인 일이란 말인가.


차라리 공감이 갈때까지 궁금해지는 점을 질문하여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관심을 보이고, 존중하고, 그렇게 공감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놓고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그 편이 깊어지기에 좋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공감해주다'라는 말을 읽을 때마다 생각해본다. 우리에게는 얼마나 공감신경세포가 부족하기에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이런 인위적인 행동이 필요한 것일까를.


나는 '괜찮아'라는 말에 공감되지 않는다.

'공감해주다'라는 말이 괜찮지도 않다.

때문에 당신의 말을 일부러 공감해줄 생각이 없다.

오직 괜찮은 것은 당신의 말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거다.


그래서 당신에게는 진심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