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필요한 거절의 지혜
'거절'이란 걸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만 해야 할 거절은 단도직입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해도 별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택'할 권리는 오히려 거절을 할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거절을 해도 별다른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거꾸로 말하자면 무슨 부탁을 들어줄 때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말이 된다.
거절을 잘 못 하는 사람의 경우, 거절하면 상대방에게 불이익을 받거나 관계가 소원해지는 등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하면서도 반대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 부탁만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부탁은 들어주면 상대방이 고맙다고 밥을 사줄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이 별 영양가는 없지 않은가.
물론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보답을 받자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 서로 도와가며 살 수 있는 정도의 상대방이라면 당장 밥한끼로 사례를 받고 마는 것보다는 장기적으로 내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답을 받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경우 남의 부탁을 들어주고서 상대방이 밥을 사겠다고 하면 다음에 만나자며 미루는 편이다. 고마워하는 마음만 받으면 그만이지, 굳이 상대방이 밥값으로 돈을 쓰고 서로 시간을 쓰면서 사는 것은 별로 생산적인 삶 같지는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상대방은 그런 마음 씀씀이에 더욱 고마워 하며 주변에 나를 좋은 사람으로 이야기해줄 것이고, 언제라도 신세 갚을 기회를 기다리게 된다. 그렇게 나는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상대방 역시 자연스럽게 은혜를 돌에 새길 줄 아는 좋은 사람이 되는 거다.
남 도와줘봐야 하나도 소용 없다고? 우리 부모님도 늘상 하시는 말이긴 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일전에 상대방이 고맙다고 밥 샀지 않은가. 밥 얻어먹었으면 되었지, 내가 좀 도와준 일 가지고 상대방이 언제까지, 얼마나 은혜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혹자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작가님 도와줘도 밥 한끼 안 사고 보답할 줄 모르는 사람도 있던데요." 라는. 맞다. 사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친구 한두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열명 도와줘서 한두 사람만 내 사람이 되어도 성공한 인생이 아닌가. 스무 명 도와줘서 서너 사람만 내 사람이 되어도 아주 성공한 인생이 아닌가. 거기다 내 도움을 받고 모른척한 사람일지라도 나를 밟을 수 있는 위치에 있거나 내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지에 있게 되면 그는 최소한 나를 밟지 않을 것이며, 좌지우지 하려 들지도 않을 것 아닌가. 이런 삶이 뭘 해도 풀리는 인생이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시 돌아가서,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거절 좀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은 이미 '거절의 지혜'를 아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정도의 스킬을 갖춘 사람이라면 이제 다시 'Yes의 지혜'도 권해보고 싶다. 사실 세상에서 사람들과 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정작 'Yes의 지혜'를 아는 사람들이다. 그만하면 적당한 부탁이야 선심 좀 써도 되는 레벨들 아닐까. 거절의 지혜를 알았다고 할 지언정 아직 그만한 경지에 오지 않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많은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거절만 잘하는 사회를 상상하면 어쩐지 너무 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