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의 '과정'도, '도구'일 수도 없다

나를 목적으로 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by 황진혁

오래도록 연락이 끊긴 친구가 있다. 내가 먼저 끊은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데, 과거 다른 친구의 말만 듣고 내게 거리를 둔 녀석이다. 거리만 뒀더라면 괘념치 않았을 텐데 입도,(...) 아무튼 sns에는 아직 있지만 자연스럽게 번호를 정리했더랬다.


며칠 전 일이다. 아는 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안부를 묻더니 그 녀석 이름을 이야기한다. 그가 나를 친구라며 잘 안다고 말하더란다. 처음에는 “그렇군요.”라고 가볍게 받았는데, 알고 보니 사장님이 그 친구네 직장 거래처이고, 그 친구는 직장 일로 거래처를 설득하러 온 것이다. 가벼운 사담을 나누는 중에 ‘요즘 청년’에 대한 이야기로 빠졌는데, (사장님께는 고맙게도)우연히 내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마침 옆에 있다고 한다. 바꿔주시겠다는 말에 나는 “바쁘실 텐데 말씀 나누시죠.”로 한 차례 사양했으나 구태여 안부나 나누라며 바꿔주시려는 통에 “그 분야 공무를 제가 알지는 못해도 그 사람 말이 옳으면 해주셔야죠.”라면서도 “그런데 우리가 친구 사이라고 말하기에는 이제 거리가 좀 있습니다.”라고 조용히 말씀드렸다.(후술할 그의 오버틱한 성격 탓에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수년 만에 그 친구와 통화를 나눴다.


역시 오버스러운 친한 척.(사장님이 그를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알 수 없다.)


평소 사람에게 크게 화를 갖지 않는 편인데 이런 인사를 1분도 들어주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 일이 급한 지경이면 염치가 없다는 고백 정도는 해야 맞지 싶어 앞으로 이렇게 연락하지는 말자고 했다.(기대하지 않았으나 따로 사과도 없었던 걸 보면 일이 잘 풀리진 않은 모양이다.)


잘날 게 없는 글쟁이 주제에 비싼 척을 하려 했던 게 아니다. 그가 나를 친구라고 말하는데, 의리는 어디로 빼먹고 그렇게 말했는지 알기 어려웠다. 아직 쓸만한 데가 있다는 안도감 정도는 들게 해주어서 고맙긴 하지만 나는 이런 경우의 사람에게 빼갈 것도 딱히 없고 내어줄 것도 하나 없다.


마음이 내리막길, 어쩐지 옛 정에 때가 낀 것 같아 속상하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