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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진혁 Jul 20. 2022

'삶의 이유'가 달라진다는 것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 맞는 인생의 전환기

내게는 '오빠'라는 말을 듣기가 다소 민망한, 약 30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 조카뻘 사촌동생이 있다.


사실 나이가 서른 중반이 되고 보니 사회에서 만난 20대 여성이 '오빠'라고 부르기만 해도 듣기가 좀 민망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편이지만, 걔는 가족이니까 어쩔 수 없긴 하다.


나중에 그녀의 사춘기가 지나서도 "오빠"라는 호칭을 허락한다면 고마운 마음으로 '오빠'가 되어볼 마음의 준비를 해보려고는 한다.(ㅎㅎㅎ) 이 소개를 뒤집어 말하면 그녀의 엄마이자 내게는 막내 이모가 되는 우리 이모와 나도 나이차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는 뜻이 된다.


언젠가 이모네 집을 놀러간 일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 의미 부여가 되는 날이었는데, 이모가 결혼하고 꾸린 신혼집을 처음 방문해봤다는 것, 이모의 배우자인 이모부와 처음 겸상을 했다는 것, 그리고 어릴 때 홀어머니 아래서 자라느라 외가집에 맡겨졌을 때나 받아봤던 이모의 밥상을 15년이 지나서 다시 만나보게 되었다는 것 정도다.


사촌동생이 자라서 읽을 날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것을 바라고 쓰는 것은 아니니까, 함께 식사를 하던 이모부는 자녀를 갖고서는 살아가는 이유가 달라진다는 말을 하셨더랬다. 물론 이모를 놓고도 하는 말이라고 하셨으니 그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삶이 되면 사는 이유가 달라진다'라는 정도로 이해했더랬다.


이 좋은 말은 내게도 당연히 좋은 말로 와닿았으나 실감의 영역에서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제서야 겨우 '어렴풋이' 그런 기분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홀몸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범위를 꼭 연인에 한정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 아닌데 이제와 알 것 같다는 표현이 지난 세월에게는 다소 미안한 마음은 있다. 그러면서도 알 것 같다는 표현이 '어렴풋한' 정도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 완벽히 안다고 말하면 나중에 돌아볼 지금은 얼마나 가소로울까 싶어서다. 우리는 저마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전부인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까.


우리가 법적 성인이 되고도, 대학을 졸업하고도 모 작가의 책 제목처럼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라고 말할 때 한편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던, '그러면 언제 어른이 될 건데?'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이렇게 유추해나가는 거 아닐까.


지금껏 나를 놓고 보면서 정해온 삶의 이유라는 게 사랑하는 사람을 놓고 봄으로써 달라진다는 것, 그런 정도의 표현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간다는 게 결국 어른이 되어간다는 거라는.


물론 결혼 소식이 있다거나 자식이 생긴 것은 아니니 확대해석은 금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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