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 즐기는 꿈나라 여행
사각사각.. 서걱서걱.. (스르륵..)
어렴풋 잠이 들었을 때 들려오는 이발 가위 소리가 너무도 살갑다.
내가 있는 부대 앞에는 '강현 이용소'가 있다.
2 ~ 3주에 한 번쯤 나는 그곳 입구로부터 두 번째 자리에 앉아서 졸다가.. 사각사각, 서걱서걱 소리를 들으며 반쯤 눈을 떴다 행복하게 다시 눈을 감는다.
잠시 잠깐 눈을 뜨면, '강현 농업협동조합' 달력이 눈에 띄고, 다이얼로 채널 돌리는 '이코노 TV'에서 4:3 비율로 날씬해진 사람이 나온다.(지금 TV는 16:9니까)
그러면 나는 하얀 가운(?)을 목에 감고 나른하고, 행복하게.. 꿈나라 여행을 떠나면 된다.
'이발소'가 아니고 '이용소'다.
이용소.. 理容所..
얼굴을 이롭게 하는 곳, '용모를 가꾸는 공간'이다.
문간을 들어서면 80대 초반 즈음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유~ 어솨요~ 전번에 왔던 군인 아자씨자니~"하고 나를 맞는다. 나는 "대대장님이 여기 좋다고 하셔서요~ "하고 지난번에 했던 말 또 하며 이발 좌석에 앉는다. 목에 흰색 가운을 휘감고 있자면, "짧게?" 하는 짤막한 '소장님'의 confirm이 있고, 나는 "네"하고 답하고, 이내 의식이 시작된다.
'소장님'이 하신 말씀을 해석하자면, "아유~ 항공대에 계신가 봐요~ 군인이시니 짧게 자를까요?"다.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 주인 할머니가 "아유~ 군인 아자씨, 이 앞에 고냉이 있는 거 밨나? 눈이 시퍼렁게 불이 나는 게, 아주 무수와~ 내가 한 마리~ 인가했더니 아(새끼들)가 마이 이써. 그리구 마이 무수와 얼굴이~"하고 하루 동안 느낌점, 이즈음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모처럼의 강원도 네이티브 스피치로 들려주신다.
내가 강원도 출신이 아니라면 못 알아들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래서 더 정감 있는 그 말들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사각사각.. 서걱서걱.. '바리깡'이 아닌 이발 가위의 소리는 잠을 부르는 소리다. 귓가를 슬쩍이는 그 이발 가위의 느낌이 좋다.
42살 아재는 아무래도 '위~잉~~"하는 바리깡 소리보다는 이 사각거림이 좋다. 차가운 듯, 아닌 듯한 가위의 촉감이 너무 좋아 약속한 듯 눈을 감으면, 어릴적 생각을 하게 된다.(사실 이쯤 되면 자는 거다.)
어릴 적 나 살던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시장통에 '충남 이발소'에 자주 앉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소장님이 충남 출신인가 보다...)
키가 너무 작아 나무 걸상을 의자 위에 두고 앉아 있었다. 그때도 자다 깨고, 자다 깨고..
잔다고, 머리 떨어지면 머리 망가진다고 혼나고 그랬다.(돈 내는데 혼나는 이유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귓가에 서걱거림이, 이발 가위의 그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이발소를 찾게 된다.
어른이 되고(남들이 어른이라고 하면 어른인 거다.) 이 부대, 저 부대 다니는 군인이 되고 여러 미용실과 이발소를 다니며 머리(누가 뭐래도 한국말 '머리'는 '머리카락'이다.)를 잘라도 그때의 기억으로, 나는 이발 가위를 사용하는 이발이 즐겁다.
한참을 서걱거리다 보면 동네 사람들이 마실 나오 듯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기석에 앉는다.
어떤 이는 말도 없이 앉는다.
어떤 이는 "아유~ 형님~ 내 이발이 안 해서 머리가 장발장이 됐잖소.(장발장은 사실 그런 캐릭터가 아닌데 말이다.)" 하고 앉는다. 화분 파는 분, 치킨파는 분, 펜션 하는 분, 국밥 파는 분, 빵집 사장님, 고기 잡는 분.. '내 뒤에 자를 사람들'이다.
'소장님'이 "어솨~ 전번에 낚시하러 온 아들은 잘 갔어?(낚시 손님 받는 펜션 사장님한테 한 말인가 보다.)" 하면 대기 손님 등록이다.
그때부터 이 마을의 옛 일들, 어머니와 아버지들, 함께 지낸 동네 친구들과 선후배들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알게 된다.
생각보다 시골 분들이 말씀이 많다..
이발을 마치면 '소장님'께서 손수 머리를 감겨주신다. 미용실의 컴포터블 의자에 앉아 받는 '뒷감김'아니고, '앞 감김'.
자글자글 도장에 금이 간 세면대에 고개를 숙이면 소장님이 손으로 슥슥 간 본, 적당한 온도의 물을 뿌려주며 비누로 한 번, 샴푸로 한 번 머리를 감아 주신다.
결재는 '계좌이체'.
이용소에서 나올 때는 별 표정 없이 나와 문 닫고, 혼자 비실 웃는다.
이 느낌, 이 정감이 좋다. '만원'하는 이용요금이 아깝지 않다.(사실 간판 사진 찍었다.)
시간이 한없이 빠르다 느낄 때, 삶의 무게로 어깨가 버거울 때, 잠시 나에게로의 시간 여행을 하고플 때 잠깐 눈 붙이며 사각거림을 들을 수 있는 곳,이런 곳이 아직 '코 앞에' 있어 행복하다. //F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