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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안 Sep 07. 2022

당신들의 보통의 하루, 나의 특별한 하루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2021.10.29 작성 _ 


내 알람은 오전 6시 10분, 6시 30분, 6시 45분에 울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저 모든 알람이 울려도 으레 그렇듯 전부 알람을 꺼놓고, 좀 더 이불에 파묻혀 있다가 불현듯 아찔한 기분에 눈을 뜨면 7시 정도였고, 부랴부랴 출근을 했었다.


요즘엔 첫 번째 알람이 울릴 때 일어나곤 한다.


오늘의 나는 첫 번째 알람이 울리고 나서 곧바로 일어나 따듯한 물에 샤워를 하고,

적당한 점성의 샴푸로 머리를 감고, 양치질을 하고, 샤워 후엔 20살 때부터 좋아하던 바디 미스트를 한껏 뿌렸다.


그 바디 미스트를 처음 알게 된 건, 20살 때였다.

같은 학원 사람이 지나가는데, 그 향기가 너무나 좋았다.

말 한 번 나눠보지 못했던 사이인데도 붙잡고 무슨 향인지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향수가 아니라 바디 미스트였기 때문에 더 끌렸던 것일까. 뭔가 담백하니까


내가 그것을 수년 동안 고집하며 사용할 줄 누가 알았을까.

어느새 그것은 나를 나타내는 또 하나의 매개체가 되었다.


나는 출근하기 전 항상 오늘의 기온을 확인하고, 기온별 옷차림을 검색한 뒤에 오늘의 옷을 나름 선정하곤 한다.


오늘은 목을 보호할 목폴라에 적당한 오버핏의 맨투맨을 위에 덧입고, 편한 신발을 신고, 나름의 깔맞춤을 위해 신발과 양말의 색상을 맞췄다.


아침 기온은 11도.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히 차가운 바람이 솔솔 불어와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내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바람에 자연스럽게 머리가 갈라지고 그 바람결에 머리가 다시 가라앉았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 등교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종종 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것을 보며 '낙엽 굴러가는 소리에도 깔깔댈 수 있는 때'라고 표현한다.


지금 보니 그 말이 딱 적당하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깔깔대며 자기들끼리 숨이 넘어가려고 했다.


무슨 얘기하는지 나도 알려줘 궁금해. 같이 웃자.


그렇게 학생들을 지나치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일찍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전광판에 '혼잡'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물론 칼같이 출근시간을 맞춰야 하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욱여넣고 콩나물이 가득한 버스에 몸을 싣었다.


나는 나름 자율 출근이니까..

'아후 또 언제 오려나..' 다음 버스도 혼잡이라면 나는 일찍 나온 보람 없이 아쉬운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근데 웬걸? 버스가 떠나자 바로 텅텅 빈 다음 버스가 도착했다.

근데 웬걸?? 하필이면 또 내 바로 앞에 있던 사람이 하차를 해 앉을 수 있는 자리도 부여받았다.


길도 막히지 않아 평소보다 좀 더 여유시간이 생겼다.

이제 나에게 마지막 선택이 하나 남아있었다.


목표 : 베이글을 먹는다.

방법 1. 스타벅스의 베이글을 먹는다.

방법 2. 회사 사거리 앞 베이글을 먹는다.


별 거 아닐 수 있겠지만, 나는 오늘 어떤 출근 루트를 이용해야 사거리 앞 베이글 집에 효율적으로 도착할 수 있을지,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줄이고자 한다면 정류장 바로 앞 스타벅스인데 과연 스타벅스의 베이글이 내 최선의 선택일지, 운동 식단을 챙겨 먹는 중이라 아침에만 빵이 허락되는데, 과연 내가 이 선택을 소홀히 해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상당히 심도 있게 진행했다.


근데 정말 과장이 아니고, 나는 저 생각을 알람이 울릴 때부터 하고 있었다.


오늘의 내 선택은 좀 더 돌아가더라도 사거리 앞 베이글 집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 직장 동료가 이곳의 오렌지 베이글을 한 조각 건네준 적이 있었다.

그 한 조각을 베어 먹고 속은 촉촉 겉은 적당히 바삭바삭한 것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근데 프런트를 보니 비밀에 부쳐진 베이글과 스프레드를 같이 제공하는 '오늘의 베이글'이라는 걸 좀 더 저렴하게 판매 중이었다.


뭐 그래 뭐든 맛있겠지 하며, 그냥 오늘의 베이글을 샀다.


잘 구워진 베이글을 받아서 보니 내가 그렇게 먹고 싶어 하던 오렌지 베이글이었다.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한 손에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다른 한 손에는 베이글이 담긴 봉투를 들고 사무실로 향했다.

텅 빈 사무실은 적당히 여유롭고 쾌적했다.


혼자 이른 업무를 시작하면서 베이글에 스프레드를 바르고,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 기분이 그 상황이 너무 평온했다.

평온함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고, 행복해서 울컥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언젠가 지금을 돌아보았을 때 후회되지 않고 떳떳한 삶을 살았다고 간직하고 싶기에 항상 노력했다.


누군가 나한테 '근데 갑자기 요즘 왜 그런 거야?'라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모르겠는데'이다.

나도 잘 모르겠다.


정말 힘들었던 시절 참고 참았던 게 지금에서야 터진 건지

현재의 어떠한 것들이 문제인 건지

지나친 완벽주의 때문인지


가끔 과거를 떠올리면, 과거의 내가 조금 안쓰럽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은 더 넓은 곳이다.


이 세 문장.

그때의 내가 저 세 문장을 들을 수 있었다면, 조금은 더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고집이 센 편이라 안 들었을 것 같긴 하지만,


나는 저런 말들이 모두 나에 대한 합리화라고 생각을 했고, 내가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인일 수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저 시절부터 내가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놀랍게도 '멘탈이 강하다'였다면 과연 믿어지겠는가.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멘탈이 강하진 않다. 약한데 나를 위해 또는 내 사회적 체면을 위해 참는 것이었고, 망가져도 회복을 위해 부단히 도 내 감정을 무시하곤 했다.

근데 그런 내가 요즘엔 감정을 무시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감정을 받아들이며 회복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는데 나아지지 않았다.


운동도 매일 하고 밥도 건강하게 규칙적으로 잘 챙겨 먹고 있는데,

마른 수건을 개다가, 집을 치우다가, 머리를 말리다가도 불현듯 눈물이 났다.


당최 나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극복할 방법을 모르겠어서 대체 왜 우는 거냐고 혼잣말을 하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살면서 처음으로 정신과를 방문했다.

처음 방문해서 이런저런 설문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묵혀놓았던 아픔도 떠올랐다.


살면서 가끔 그때가 떠올라도 덤덤했다.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다.

어쨌든 난 지금 잘 살고 있으니까 그건 과거니까


그랬던 나였는데, 눈물이 앞을 가리고 목이 막혀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마주했다.


그간 무시하고 있던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게 오늘이었다.


오늘의 나는 아침에 베이글을 먹다가 너무 행복한 기분에 울컥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울컥한 이유는 단지 그 베이글이 너무 맛있어서가 아니었다.

무언가로 인해 내가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게 너무나도 오랜만인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좋아서.

내가 정말 나아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추위를 극심하게 타지만 얼어 죽어도 코트, 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를 고집했었다.

목이 갑갑한 게 싫어 목폴라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인생 폼생폼사라며 불편한 신발과 옷을 즐겨 신었다.

어려 보이고 만만하게 보이는 게 싫어 잘 웃지도 않고 선만 그었다.


그랬던 내가 이젠 목이 따뜻해야 몸이 따뜻하다며 목폴라와 목도리를 매고, 따뜻한 물과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코트 대신 최대한 따뜻하고 편안한 옷과 신발을 찾아 입고, 웃고 싶을 때 웃는다.

사람들에게 편한 모습을 보여주고 내 선을 조금 더 내 쪽으로 당기고 있다.


이전까지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프레임이 나 자신에 대해 명확하게 있었다.


그 프레임에 나를 계속 맞추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프레임들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는 걸 이번에 크게 깨달았다.


'나한테 한계란 없다!'라고 생각했으면서

왜 내 생각과 행동은 그렇게 가둬놓고 한계를 지으려고 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젠 행복한 내 현재를 위해 그리고 다가올 보통의 날들을 위해

안 해보던 것들도 해보고, 나를 좀 더 놓는 연습을 하며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본인이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래 그런 날도 있다.

하지만 영원히 최악은 아닐 것이다.


보통의 하루가 내겐 얼마나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지 알고 있다.


근데 그 보통의 하루를 위해 너무 애쓰면서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놓아도 되고, 흔들려도 된다.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된다.

도움을 받아도 된다.



모두에게 다가올 보통의 날들을 위해



- 2021.10.29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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