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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블라썸 May 17. 2023

코드 블루

#20. 토요일, 저녁 7시

세 사람의 제주 여행은 민아와 선우의 계획에 걸맞은 성과 없이 끝나 버렸지만, 연희에게는 잔잔하게 힐링이 된 여행이었다. 이 여름방학도 여전히 겨울방학 때처럼 병원을 오가는 생활이 계속되었지만, 크게 불만족스러운 상황은 아니었다.


선우가 짚어준 대로 딸 앞에서 자신의 고단함과 슬픔은 표현도 못하고 있을 김여사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져서 오히려 병원을 더 열심히 찾아가 김여사를 거들었다.


"그러지 말고, 엄마도 잠시 바다라도 한번 구경하고 와. 미용실 휴가 때, 사람들하고 같이 여행이라도 한번 다녀오던가... 원장님도 혼자라고 안 그랬나? 같이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얼마나 좋아?"


"하하. 안 그래도 바람 쐬러 가자고는 하던데, 내가 뭐 이팔청춘도 아니고, 별로 재미난 것도 없다."


"왜 없어? 엄마가 지금 병원에만 너무 오래 있어서 그래. 제발, 이 딸 믿고 하루라도 다녀와. 그래야지, 3박 4일 여행 다녀온 내 맘이 편해."


"얘는, 이 나이에 놀러 갈 때가 어딨다고?"


"아냐, 내가 인터넷 검색해서 찾아주까? 왠지 원장님은 좋은 곳 많이 아실 듯한데? 내가 원장님께 전화라도 해 볼까?"


"앗써라. 진짜 왜 그래?"


"내가 미안해서 그러지. 아빠 이렇게 누워있는 게 언제까지일지도 모르는 데, 내 방학 동안이라도 잠시 쉬고 와. 자고 오면 더 좋고..."


"얘는 정말..."


이렇게 등 떠밀다시피 해서, 김여사에게 겨우 여름휴가 하루가 주어졌다. 침상에 누워있는 아버지에겐 미안했지만, 그래도 엄마도 바깥바람 좀 마시며 살아야 되지 않겠냐며 아버지 몸을 닦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다행히 김여사와 친구처럼 말도 잘 통하고, 이럴 때 같이 바람 쐬러 가자고 말해주는 원장님이 있어서 참으로 고맙고 다행스러운 마음이었다. 비즈니스로 만난 관계이지만, 둘이 단짝 친구가 되면 좋겠다고 연희는 생각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자신이 출가하게 된다면 그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친구 한 명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기고 하고, 그렇게 단짝 친구가 쉽게 생기는 게 아니라면 그 빈자리는 자신이 채우는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비혼으로 엄마랑 평생을 같이 살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결혼을 하더라도 엄마에게 아들처럼 살가운 사람이 자기의 짝으로 걸맞지 않을까 어렴풋이 상상했다.


아버지 병원 생활 후 처음 가져본 휴가. 이 휴가가 있어서 조금은 마음에 여유가 생긴 듯했다. 평소 생각할 틈도 없었던 엄마의 짠한 인생에도 한번 더 공감하게 되고, 자신의 결혼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여유가 생겼다.


병원밖 플라타너스 나무 사이에서 목청 터져라 울어대는 매미의 소리가 더 이상 시끄럽게만 들리지 않았다. 7년을 참아낸 인내로 뿜어내는 소리일 지니, 더욱 목청껏 소리를 높여 자신의 생을 장렬히 마감하길 빌었다. 연희의 아버지도 참지만 말고 아프다고 매미처럼 소리 내어 울기라도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미가 열심히 울면 울수록, 8월의 태양은 더욱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며 더위의 최고 정점을 찍고 있었다. 병원 내의 에어컨은 환자든 보호자든 적당히 짜증이 올라오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온도조절하며 열일하고 있었지만, 정신없이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환자들에게는 여지없이 힘든 계절임에 분명했다.


더위가 최고치를 찍는 날에는 코드 블루가 더 자주 발동되어, 의사들이 우르르 몰려 뛰어가는 장면을 더 자주 목격하게 되었다. 그럴 때면, 알지도 못하는 그 환자의 모습과 그를 처치하고 있을 의료진의 모습, 그리고 가족들의 모습들까지도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려져서 연희는 마음이 종종 힘들었다. 뉴스에서는 연일 37도가 넘는 더운 날이라고 했지만, 연희에게는 공포영화라도 본 듯 간담이 써늘한 여름날이었다.


 연희의 등살에 밀려 겨우 하루치 여행을 하고 온 김여사는 당일치기 여행이었음에도 연희에게 미안해하며, 주중에는 병원에 오지 말라고 타일렀다. 어쩌면, 여행 다녀온 것이 미안한 것이 아니라 코드블루가 발동될 때마다 흔들리던 연희의 눈동자를 김여사는 감지했으리라.


그래도, 연희는 방학 동안에는 틈만 나면 짬을 내어 병원에 들렀다. 아버지를 보기 위함과 김여사를 보기 위함 둘 다의 목적을 가지고서...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광복절을 지나 여름휴가의 절정이 끝나가는 무렵. 여름 방학도 끝나가는 무렵. 이쯤이면 더위도 한풀 꺾이리라 생각되는 무렵. 코드 블루도 조금은 잦아들었으리라 생각되는 무렵.


방학 마지막 주라서 더 이상 김여사를 챙겨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3층 찬합에 부족한 솜씨로 유부초밥과 샌드위치, 과일 몇 조각을 층층이 담은 조촐한 도시락을 들고, 아버지가 누워있는 병실로 향하던 그때였다.


8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코드블루가 발동되었고, 사방에서 의사들이 몰려들며 맹수에게 쫓기는 영양처럼 정신없이 한 곳의 병실로 뛰어가고 있었다. 그 병실을 바라보기도 전에, 이번에는 아버지 차례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그림자처럼 연희 등뒤에 바짝 들러붙었다. 연희는 다리 힘이 풀린 채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덩달아 손에 들고 있던 찬합 도시락통도 엘리베이터 반대 방향으로 저 멀리 내동댕이 쳐졌다.


빠르게 자신을 지나 뛰어가는 의료진에게 길을 내어주느라 몸을 일으켜 세울 겨를도, 도시락통을 주울 틈도 없이,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는 의료진들의 뒤꽁무니만 바라보았다. 간신히 무릎을 일으켜 세워보려 했지만, 현기증이 났다. 엘리베이터에서 같이 내린 한 사람이 괜찮냐고 물으면서 연희가 일어설 수 있도록 부축하며 도와주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도시락통을 주워주며, 연희 손에 들려주었다.


빨리 의료진 뒤를 따라가 보아야 하겠지만, 걸음을 빨리한다고 해서, 의료진과 같이 병실에 들어갈 수 없음을 요 며칠간의 경험으로 추측할 뿐이었다. 천천히 정신을 가다듬으며 벽을 짚고 겨우 일어나 병실로 향하자, 매미처럼 목청껏 목놓아 울지도 못한 채 벽에 기대어 흐느끼고 있는 김여사가 보였다. 


김여사가 보이자 연희는 그제야 걸음에 속도가 붙었고, 거의 뛰다시피 한걸음에 달려가 김여사를 껴안았다. 김여사가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참고 눌러두었던 눈물이, 댐이 터지 듯 폭발적으로 흘러넘쳐 금세 연희 가슴팍과 짧은 소매를 축축이 적셨다. 김여사가 엉엉 우는 소란에 연희도 눈물이 흘러넘쳤지만, 함께 엉엉 소리 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김여사를 꼭 껴안은 채 등을 쓸어내릴 뿐이었다.


코드 블루 발동에 불안감을 억누르고 있던 사람은 연희만은 아니었던 듯했다. 병실 내에서는 몇 번의 심폐소생술 끝에 의사의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닫혔던 커튼이 열리고, 하얀 침대보로 덮인 채 실려 나온 연희의 아버지는 1년 넘게 애석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봐주던 딸과 아내에게 눈길 하나 주지 못하고 낯선 이처럼 지나쳐갔다.  


그간의 병간호에 대한 성의는 알고 싶지도 않다는 듯 차갑게 얼어붙은 시신은 새로운 저세상 구경할 채비를 하러 신속히 그 자리를 떠났다.


숨이 막혔다. 날이 더워서도 아니고,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는 김여사 때문도 아니었다. 평소 지긋지긋하다고 생각되던 병원 생활이 이제 끝난다는 안도의 한숨은커녕, 오히려 지긋지긋하다고 생각되던 병원 생활이 이렇게 끝나 버리는 게 못내 아쉬워 숨이 막혔다.


가슴이 답답했다. 마지막이 언제가 될지도 모르면서 그간 아껴온 말들이 후회가 돼서 가슴을 치니, 참고 있던 슬픔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 데, 사랑한다는 말도 용서해 달라는 말도 못 했는 데, 하얀 침대가 되어 멀어지는 아버지를 보게 되니 쉽게 시선을 거둘 수 없이 연희의 가슴만 점점 더 미어졌다. 아버지는 끝까지  덤덤하게 모든 게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오히려 이렇게 먼저 가서 자신이 더 미안하다고 말하는 듯해서...


이렇게 여름 방학의 마지막날, 연희는 검은 상복에 하얀 리본을 머리에 꽂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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