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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블라썸 May 24. 2023

소주 한 잔

#23. 토요일, 저녁 7시

"아가, 저리 어린 데, 우짜노?"


선우 집에는 이렇게 손님이 많이 온 적이 없었는 데, 엄마 따라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온 이곳에는 손님들이 정말 많았다. 오랜만에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 등 아빠 가족도 다 모였고, 엄마 쪽 가족들도 다 모였다.


고모를 따라 선우가 알지 못하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을 만나 인사를 하면, 자신들은 아버지와 사촌이라는 둥, 육촌이라는 둥 선우가 이해할 수 없는 관계를 들먹이며 자신들 얼굴을 기억하라고 강요하거나, 만 원짜리 하나를 손에 슬며시 쥐어주거나,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등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다양했지만, 어린 나이임에도 그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가 어려가꼬... 엄마도 불쌍네."


한숨과 함께 간간이 들려오는 이런 말들의 행간의 의미는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모두 선우와 선우 엄마를 불쌍하게 생각한다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아빠 가족, 엄마 가족 다 모여서 조금 신이 날 것도 같은 데, 지금은 신이 나면 안 되는구나 싶었다. 결정적으로 아빠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모든 가족들이 다 모였는 데, 아빠는 어디 가고 사진만 덩그러니 있는 건지 엄마에게 묻고 싶었지만, 바닥을 치며 통곡하고 있는 엄마에게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고모가 선우 손을 꼭 붙들고 있어서, 마음대로 엄마한테 달려가 품 속에 안길 수도, 검은 치맛자락을 붙들고 늘어질 수도 없었다.


이렇게 바로 눈앞에 엄마를 두고도 엄마 가까이 갈 수 없던 며칠의 날이 지나고, 전래 동화 속에서나 본 적 있는 무덤 많은 곳이 이제 아빠의 집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선우는 이해했다. 엄마와 살고 있는 집에서는 더 이상 아빠를 볼 수 없다는 것을.


검은 한복을 벗은 엄마와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왔지만, 엄마의 행동은 검은 한복을 입고 있을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방 밖으로 잘 걸어 나오지도 못한 채, 계속 울기만 했다. 엄마가 아픈 듯 보였다. 아픈 엄마를 힘들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레고 블럭으로 성을 만들고 부수기를 수십 번 반복하며, 혼자서 조용히 놀았다.


아빠와 함께 성을 만들고 자동차를 만들고 집을 짓고 하던 것보다는 혼자서 하는 것이 조금 어려웠지만, 그래도 할 만했다. 혼자서 노는 것도 그럭저럭 할 만하고 참을만했다. 아빠가 며칠간 출장 갔을 때도 그렇게 놀곤 했었으니까...


하지만, 배고픈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밥을 줘야 하는데, 삼시 세끼를 다 챙겨주지를 못했다. 어떤 날은 두 끼를 먹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한 끼만 먹기도 했다. 집에 쌀이 없는 것도 아닌 데, 검은 한복을 벗은 이후로 엄마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엄마에게 떼쓸 줄 모르던 착한 아이 선우가 한 끼만 먹었던 그다음 날, 아침 댓바람부터 울고 있는 엄마가 그날도 한 끼만 밥을 차려줄 까봐 덜컥 겁이 나서 엄마에게 밥 달라고 조르고 말았다.


"엄마, 나 배고파~. 언제까지 울 거야?"


울던 엄마가 선우를 쳐다보더니 가슴 깊숙이 선우를 끌어안았다, 엄마는 울음을 멈추려 애썼다. 하지만, 쉽게 멈춰지지 않는지 딸꾹질하듯 목울대가 여전히 꿀렁거리고 있는 자신을, 끌어안은 선우로 꼭 누르며 진정시키려 했다.


"선우야, 엄마가 정말 미안해. 엄마에게는 이렇게 소중한 선우가 있는 걸 잠시 잊고 있었네. 엄마, 이젠 안 울 거야. 선우가 있으니까 엄만 괜찮아. 우리 선우 배고프지 않게 밥 잘 챙겨줄께. 그동안 선우를 잊고 배고프게 해서 정말 미~안."


***


"선배, 미~안. 혼자 둬서."


연희를 달래고 민아가 돌아왔다.


선우는 혼자 앉은 식탁에서 생전 처음 가본 장례식장이 바로 아버지의 장례식장이란 게 떠올랐다. 그때는 몰라서 못 느꼈던 슬픔이 이제야 차오르는 듯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선배, 모야? 지금 연희 언니 때문에 우는 거야?"


선우의 속마음을 모르는 민아는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선우에게 물었다.


"뭐야, 짜샤? 그런 거 아냐. 그냥 내 생전 처음 가 본 장례식장이 떠올라서 그래."


"그게 누구 장례식이길래, 그렇게 슬퍼?"


"우리 아버지."


"앗! 미안, 선배."


"아냐, 다 지난 일인 걸. 그땐 어려서 엄마가 그렇게 우는 데도 잘 몰랐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슬프네."


민아, 선우 둘 다 숙연해졌다. 민아가 소주병을 땄다.


"이럴 땐, 한잔 하는 거야, 선배."


눕혀져 있던 잔을 세워 가득 채우며, 선우에게 내밀었다. 입안 가득 한 모금 머금은 술이 오늘따라 달았다. 잊고 지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쓰라린 만큼 술이 달았다.


"연희에게도 한잔 주고 싶네. 이런 날엔 소주 한잔 해야 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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