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재판

매주 금요일은 팀 회의가 있는 날

by 윤아부지

금요일 아침 근무 시작 시간 5분 전.


한통의 메신저가 날아왔다.


나랑 같이 커피 12잔 뽑아서 회의실로. 지금 바로.


바로 윗 선배로부터의 메신저다.


어리둥절하다가 선배가 일어나 가길래 따라간다.


휴게실에 있는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기 시작했다.


옆에서 잔 수를 세면서 쟁반에 커피를 옮겨 담는 일을 거들었다.


매주 금요일 8시는 팀 회의야
내가 도와주겠지만 앞으로 내가 없거나 할 때는 네가 커피를 챙겨야 해


그렇게 커피를 뽑아 들고 회의실에 가니 팀원 모두가 앉아있었다.


그렇게 1시간 동안의 정신없는 회의가 끝이 났다.


매주 금요일의 시작은 팀 회의와 함께한다.


우리는 그것을 “인민재판”이라 불렀다.




꼰대는 회의를 좋아한다.


팀장 자리에는 부서장 회의 스케줄 표가 붙어있었고, 팀원들의 자리에는 팀장의 회의 스케줄 표가 붙어 있었다.


빡빡하다. 회의가 그들의 주된 업무다.


회의 시간 전 후를 특별히 주의해야 해


선배가 처음 내게 알려준 주의사항 중 하나다.


부서장들이 참석하는 임원 주재 회의가 있는 날이면 부서장님이 회의록을 들고 팀장들 자리로 바삐 움직이며 회의 내용을 파악하기 바빴다.


부서장이 주재하는 팀장 회의가 있는 날이면 팀장들이 팀원들을 찾아다니며 회의 내용을 파악하기 바빴다.


회의가 끝나고 돌아오면 담당들이 불려 가서 깨지기 일수였다.


그래서 부서장님이나 팀장님이 회의에 참석하는 시간 전 후는 항상 긴장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꼰대는 회의를 좋아한다.


수시로 불러서 회의를 했고 대부분의 업무 파악을 직접 불러서 눈앞에서 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럼에도 보고서는 덤이었다.


그런데 금요일의 팀 회의는 조금 달랐다.


우리가 팀 회의를 인민재판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가 있다.




오늘은 누구일까?
글쎄, 나만 아니면 되지 뭐


회의에 들어가는 팀원들의 대화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곧 이해할 수 있었다.


금요일 회의는 마치 그 주에 있었던 가장 최악의 업무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자리와도 같았다.


담당자 한 명이 잘못한 업무를 수많은 팀원들이 보는 앞에서 질타하는 자리였다.


꼰대는 팀원에게 계속 묻는다.


김 차장, 박 과장이 이 업무를 이렇게 했는데 맞는 거요?
우째하는게 맞는지 함 말해보소?


가끔은 내게도 물었다.


신입, 네가 생각하기에 이게 맞는 거 같아?


침묵으로 일관하는 수밖에 없었다.


뭘 알아야 대답을 할 텐데, 그렇다고 또 안다고 대답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1시간의 짧다면 짧은 팀 회의 시간.


1시간 내내 그 주의 Worst 업무를 질타하고 복기한다.


인민들의 의견을 묻는 과정 또한 필수다.


회의가 끝나고 나오는 팀원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지 않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모두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니라 다행이야





지금은 회사 분위기가 많이 젊어졌다.


꼰대들은 팀장의 자리에서 물러 났으며 젊은 사람들 위주로 팀장들이 구성되었다.


아직도 주 1회 팀 회의는 진행이 되지만, 분위기는 인민재판이 아니다.


사는 이야기가 반, 회사 일은 공지 수준으로만 전달하고 15분 내외로 끝난다.


15분의 짧은 팀 회의가 끝나고 나오는 길이면 한 번씩은 예전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뭣도 모르고 앉아서 선배들이 질타받는 모습을 지켜보던 자리.


팀원들로 하여금 그 업무의 잘못을 함께 질타하게 만들던 그 자리.


인민재판과도 같았던 그때의 회의 분위기.


지금도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다.


출처: 페이스북 약치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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