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좀 끼워줘라
오늘 한잔 할까요?
거의 매일 오후, 퇴근시간만 되면 날아오는 쪽지다.
아니 쪽지였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김 과장, 서 과장, 최 대리 할 것 없이 말단의 황 사원까지, 언제나 나를 찾았었다. 저녁에 한잔 하자고.
나는 젊은이들의 수장이었다.
모두 나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특히나 당시 꼰대가 날 뛰기라도 한 날은 더욱 젊은 사람들끼리 똘똘 뭉쳤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나를 중심으로 젊은 사람들의 모임이 이루어졌다.
오늘 마치고 한잔 할까?
김 과장, 서 과장, 최 대리 그리고 말단의 황 사원에게까지 쪽지를 돌린다.
예전 같으면 빠르게 답이 오던 애들인데, 답이 없다.
한참 뒤에야 핑계 같은 답변들이 돌아온다.
오늘 동기 모임이에요
오늘 친구 만나요
여자 친구랑 데이트합니다
애들이 예전 같지 않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찾지 않는 것뿐 아니라 아무도 나와 술 한잔 해 주지 않는다.
팀장이란 이런 자리인 것인가?
예전 꼰대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다음 날 출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출근을 하는 팀원들을 바라본다. 다들 눈이 빨갛게 충혈이 되었다.
궁금하다.
왠지 나 빼고 자기들끼리 한잔한 것 같다.
10시가 되자 팀원들이 커피를 한잔씩 들고 휴게실로 간다.
그래, 생각해 보니 오전 10시, 오후 3시의 10분간의 달콤한 휴게 시간의 중심에도 내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커피를 한잔 타서 급히 휴게실로 다가간다.
멀리서부터 팀원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온다.
어제 있었던 술자리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만 빼고 술자리를 가진 것이다.
궁금해서 숨어서 듣고 있었다.
내 이야기가 나온다.
요즘 꼰대 개 짜증 나지 않아요?
믿었던 서 과장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황급히 팀원들이 자리를 뜬다.
어쩌다 내가 왕따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출근시간에 맞춰 겨우 출근한 김 차장님이 기분 나쁘게 실실 웃으며 실없는 농담을 건넨다.
나도 젊은 사람 무리에 끼고 싶은데 주변엔 항상 늙다리 아재들만이 최불암 시리즈에 나올 것 같은 농담을 던진다.
팀원들은 또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출근을 한다. 어제 한잔 한 것이 틀림없다.
다시 10시 휴게시간이 되었다.
젊은 팀원들은 또다시 커피를 타서 휴게실로 향한다.
너무 궁금하다.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지 무슨 대화를 하는지 또 몰래 엿듣고 싶을 지경이다.
수 백번을 고민하다 슬쩍 들어볼까 하는 생각에 따라가 본다.
가는 길에 황사원의 모니터에 떠 있는 그룹 메신저가 보인다.
모른 척 슬쩍 앉아서 대화 내용을 읽어봤다.
서 과장: 아 어제 너무 마셔서 머리아픔ㅋㅋㅋ
김 과장: 야 어제 팀장 제끼느라 힘들었다
황 사원: 고생하셨습니다. 커피나 먹죠.
어제 또 한잔 했나 보다.
어제도 내가 먼저 한잔 하자 했는데, 일이 있다던 팀원들이 자기들끼리 뭉친 것 같다. 심지어 나를 제꼈다니.
대화 내용을 천천히 읽어본다.
내 욕이 대부분이다.
어제 서 과장을 불러다 한마디 한 것이 이야깃거리였다.
꼰대 미친 거 아니가 ㅋㅋㅋ 서류 던지는 거 봄??
내가 너무 심했나 싶으면서도 내가 당한 것에 비하면 이런 것쯤이야 하는 생각이 동시에 떠오른다.
혼란스럽다.
그때 멀리서 팀원들 소리가 난다.
황급히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내가 보고 있던 걸 본 것은 아니겠지?
신나게 팀장을 씹는다.
요즘 10시만 되면 팀원들끼리 모여서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언제나 꼰대 팀장이다.
어제도 한잔하며 했던 이야기들을 되풀이하며 웃느라 정신없었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팀장 뒷모습이 보인다.
혹시 들은 것은 아니겠지?
오늘도 마치고 형님들과 한잔하며 팀장을 씹어댄다.
아니, 자기가 꼰대라면서 욕하던 전 팀장님이랑 행동하는 게 똑같다니깐요??
그니깐~ 미친 거 같다~
다음날도 출근 시간에 맞추어 겨우 출근을 해 낸다.
오늘도 어김없이 김 과장님, 서 과장님 최대리 님과의 그룹 메신저를 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도 고생하셨습니다 형님들~
엔빵 날아갑니다! 각 23,500원입니다
메신저로 팀장 욕을 하며 10시에 있을 커피 타임만을 기다리며 버틴다.
10분은 너무 짧다. 팀장 욕을 시작하면 30분도 모자란다.
오늘도 그렇게 신나게 떠들고 자리로 돌아간다.
팀장이 내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본다.
내 메신저를 본 것 같다.
제 메신저 털린 것 같습니다.
김 과장님이 당분간 조심하라고 하신다. 항상 자리를 떠날 때는 윈도 + L을 누르자고 한다. (화면 잠금)
진짜 나를 빼고 놀고 있었다.
거기다 계속 나를 씹어댄다.
기분이 좋지 않다.
한잔 하고 싶지만 기댈 곳이 없다.
옆에 있는 김 차장님이라도 불러 한잔하러 간다.
별 재미가 없지만 내가 있을 곳은 여기인가 싶으면서도, 여전히 나의 원래 그룹이 그립다.
그립고도 궁금하다.
그렇게 이제는 진짜 꼰대가 되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나는 꼰대가 아닌 줄 알았는데, 어느덧 꼰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