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때부터 꼰대는 없더라
부서장이 조용히 불러서 자리로 갔다.
네가 팀장 자리를 좀 맡아줘야겠다
생각지도 못한 시기에 찾아온 팀장 자리 제안이다.
아직 팀 내에 나보다 선배 부장님들이 몇 분 계신다.
내 차례가 아닌 것 같은데 나더러 팀장을 하라고 한다.
정중히 거절의 의사를 표명했다.
아직 제가 팀을 맡을 처지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부서장께서 헛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원래 팀장이란 자리가 그런 것이라며,
나도 너만 할 때 팀장이 되었다며,
사실 제안이 아니라 통보였다는 말과 함께 인사 명령이 날 테니 그리 알고 있으라고 한다.
자리에 앉아 주변의 팀원들을 쭉 훑어봤다.
내가 이 사람들을 끌고 잘해 나갈 수 있을까?
나보다 선배님들이 내 말을 듣기나 할까?
걱정이 앞서고 고민이 많아진다.
며칠 뒤 인사 명령이 났다.
공식적으로 팀장이 된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것 후회 없이 열심히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십 수년간 많은 '꼰대 팀장'들을 모셔왔다.
나름 젊어진 분위기의 팀을 바라보며 다짐한다.
나는 적어도 꼰대 팀장은 되지 않을 거야
그들처럼 행동하지는 않을 거야
팀 내에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친한 차장님이 계신다.
특진을 2번이나 해서 젊은 나이에 이미 차장 직급을 달았으며 촉망받는 인재다.
젊은 사람들을 주도하며 팀의 분위기를 만들어 가시는 분이다.
그래서 팀 내 젊은 사람들은 모두 그를 차장님이라는 직급 대신에 형님이라 부른다.
어느 날 그로부터 메신저가 왔다.
나 팀장 될 것 같아
앞으로도 그를 형님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래, 저 형님은 다를 것이야.
모두가 모여서 입을 모았다.
드디어 우리가 편하게 대할 수 있는 팀장이 생겼다고.
앞으로 팀 분위기가 좋아질 것 같다고.
부서장이 부른다.
방금도 불러서 다녀왔는데, 자리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불러서 갔다.
니는 팀 관리를 하는 거냐 마는 거냐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문제가 자꾸 터지노?
방금 욕을 실컷 얻어먹고 왔는데, 불러서 가니 또 욕을 먹는다.
한 시간을 서서 욕을 듣다 보니 머리가 핑 도는 것 같다.
부서장이 주재하는 팀장 회의에 참석한다.
당연히 팀장 중 내가 막내다.
회의 내내 우리 팀 욕만 하신다.
다른 팀장분들도 한 마디씩 거든다.
너네 팀 요새 왜 이러냐?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팀원들을 훑어본다.
팀원들이 밉게 보인다.
내 말은 지지리도 안 듣는 것 같다.
알아서 잘해주던 사람들이 왜 이렇게 문제만 만들어 내는지 모르겠다.
몇 명을 불러다가 한마디 한다.
한마디가 두 마디가 되고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욕을 퍼붓고 있다.
속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후련하다.
그래도 내가 오늘 들은 욕들에 비하면 이건 별것도 아니지
속으로 생각하며 스스로 합리화한다.
그렇게 꼰대가 되어간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꼰대가 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분명 팀원일 때는 꼰대력을 찾아볼 수 없던 사람이 팀장이 되니 꼰대가 되는 경우가 많다.
팀장이란 자리가 그렇다.
위에서는 팀장에게 팀원 관리를 맞기고, 팀원들은 팀장이 팀원들의 방파제가 되기를 바란다.
중간에 끼어있는 괴로운 자리다.
아무리 팀원들을 위하는 팀장이 되겠다고 마음먹어봤자,
윗사람에게 불려 가서 매번 깨지고 돌아오면 팀원들이 밉게 보이는 날이 점점 많아진다.
알아서 잘해주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회사에 남아있는 수직적 조직 문화가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결국, 자리가 꼰대를 만드는 것이다.
날 때부터 꼰대인 사람은 없다.
자리가 꼰대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