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와의 전쟁
숙취와 함께 기상하는 날이면 매일 수 백번을 외치는 문장.
다시는 술 먹나 봐라
어제는 정말 많이 마시지 않은 것 같았다.
아내에게 잔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지 회식 자리에 가더라도, 친구들과의 모임 자리에 가더라도 1병 반을 넘기지 않게 노력하고 스스로 조율한다.
어제도 그 언저리를 마셨을 뿐 더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특히나 나는 필름을 잘 끊는 편이다.
통째로 날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다행히도 집에는 잘 찾아온다.
그리고 꼭 잠들기 전의 30분 정도의 기억이 사라지곤 한다.
이런 상황이니 아내가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스스로의 생각과 아내의 잔소리의 조합으로 타협한 주량이 바로 소주 한 병 반이다.
딱 기분이 좋고 숙취도 없으며 기억을 잃거나 사고를 치지도 않는다.
아이고 대가리 깨지긋네
나지막한 혼잣말과 함께 눈을 뜬 것은 4시 무렵이었다.
요즘은 새벽에 잘 깨지 않고 잘 자는 편이다.
그럼에도 눈이 떠진 것은 숙취 때문이다.
5시 45분이면 기상을 해서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데 큰일 났네 하는 생각과 동시에 다시 잠을 청하지만 이미 두통은 나를 잠에 들도록 허락해 주지 않았다.
술을 마셨으니 조금 늦잠을 자도 되지 않을까 하며 나를 유혹하는 악마를 뿌리치고 평소 기상 시간에 몸을 일으킨다.
한쪽 머리가 여전히 지끈 거리고 속까지 쓰려 온다.
나는 이런 날이면 밥 한 톨,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몸이 된다.
해장은 내게 꽤 먼 나라 이야기다.
머릿속은 이미 온통 같은 생각만 돌아가고 있다.
다시는 술 먹나 봐라
근근이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근무 시작 시간까지 눈을 붙인다.
본격적으로 속이 쓰려오고 토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물을 마시며 아픈 속을 달래 보지만 물이 들어가는 족족 튀어나온다.
화장실을 수십 번 들락이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한 생각이다.
다시는 술 먹나 봐라
사람이란 참 신기하다.
저 말을 수백 번 외치지만, 점심시간의 휴식 이후 조금씩 살아나면서 또 술이 생각난다.
주변 동료들이 오늘 한잔? 하는 말에 제법 근사한 안주들이 떠오르며 그럴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후 3시. 완전히 회복되는 시간이다.
그렇게 수 백번 머릿속으로 외쳤던 다짐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무슨 안주에 술을 마실지 고민을 시작한다.
약속이 없는 날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집에 가서 아내가 해 준 반찬을 보면 또 생각이 난다.
맥주 한잔 정도는 괜찮잖아?
식탁에서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 한 캔을 칙 하고 딴다.
개가 똥을 끊지
말은 하지 않지만 아내의 눈빛이 말하고 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