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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철 Jun 12. 2024

한국인들은 창의적으로 사유하지 못하는가?


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를 보면 외래 사상을 받아들일 때 한일간의 태도 차이를 지적하는 대목이 있다. "첫째로...일본 문화가 외부로부터 도래하는 문화에 대해 브리콜라주(수선)적인 포섭 방법을 취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조선은 외부로부터 도래한 사상이 기존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변을 추진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려 시대에 불교가 사회 변혁을 시도했고, 조선에서는 주자학이 국가의 통치 이념이 되면서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꿨다. 이런 전통은 현대에 들어서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공산주의라는 사상(주체사상)이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일본과 다르게 조선에서 '사상의 혁명적인 정치적 역할'의 크기가 막대하다는 것이다.”(<조선사상사>(이신철 역, 도서출판 길, 2022)



브리콜라주(bricolage)는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 The Savage Mind』에서 사용한 문화 용어인데, 오구라 교수는 그것을 일본 특유의 사상적 태도를 기술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외래적인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사유의 틀과 결합해서 새롭고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손재주와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존의 개념 체계나 기술 등이 큰 역할을 발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런 선 이해 혹은 선 능력이 없으면 새롭게 변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능동적인 지식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조선의 ‘전면적 개변’은 외래 사상이나 문물을 접할 때 자신의 것에 기초해서 새로운 것과의 종합이나 변형을 시도하지 않고,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 태도이다. 이러한 사유는 외래 문물이나 사상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할 때 가능하고, 동시에 이미 들어온 것을 내부적으로 끊임없이 수정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전면적 개변’은 상당히 역동적인 태도라고 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사상의 축적이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단점과 비주체적인 태도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사실 이런 식으로 비교를 하다 보면 약간은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한국은 주체의 수용 능력이나 재해석 능력이 없어서 그냥 액면 그대로 외래 사상에 노출된다는 것이고, 일본의 경우는 언제나 새롭게 수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와 그것을 수용자의 해석 능력에 따라 변형하고 재 창조할 수 있다는 의미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런 지적에는 거부하기 어려운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에 사실 불편하기는 하다. 한국은 늘 외래 사상이 강하게 들어오면 그것으로 기존의 지배적인 사상을 전면적으로 개변하게 된다. 때문에 사상 간에 부정이 이루어질 뿐 생산적인 축적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이런 바탕에서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역동적인 면은 보이지만 새로운 사상에 대한 주체적 정리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말하자면 기존의 것을 절대적으로 숭배하거나 또는 그것을 완전히 폐기하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할 뿐이다.  이 땅에 서양 철학이 들어온 지 100 여 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한국은 수용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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