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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시절 1편

by 이종철


아침에 아내와 식사를 하다가 결혼하고 나서 언제 행복했었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어려웠었지만 삼송리와 오금리에 살았을 때라고 말한다.


1980년 대 말 결혼을 하고 나서 나는 전혀 연고가 없는 경기도 세수리로 이사를 왔다. 지금은 완전 신도시로 변한 이곳은 구파발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아내가 다니던 병원이 연신내에 위치해 있어서 출퇴근이 비교적 가깝고 저렴한 곳을 찾다 보니 이곳까지 왔다.


내가 이곳에서 강릉대로 출강을 했다. 당시 나는 강릉대에서 1박 2일로 강의를 했다. 1교시 강의가 9시에 시작해서 오전 6시 고속버스를 타야 하니까 새벽 부터 일어나 5시 전에 집을 나서야 했다. 그런 새벽에도 아내는 뚝배기에 장국을 끓여서 밥을 챙겨 주었다. 한 번은 어느 여름날 아내 친구가 놀러 왔었는데 밤새 소나기가 심하게 내렸다. 비가 심하다 보니까 하수구 배출이 안돼서 역류하려고 했다. 친구까지 나서서 물을 퍼내면서 버티다 보니 다행히 침수는 면했다. 전형적인 시골이라 화장실도 집에서 좀 떨어진 재래식이다. 비교적 옛날이지만 당시에도 화장실은 대부분 수세식이던 시절이었다. 그 집 주인은 손에 하얀 목장갑까지 끼면서 고급스런 차를 몰았는데 왜 화장실은 재래식으로 살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번은 구파발에서 고등학교 동기 결혼식에 왔던 친구들이 그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그 때 한 친구가 어떻게 이런 곳에 사냐고 하면서 광명시에 자기가 사둔 아파트로 이사를 가라고 했다. 그런데 이 아파트가 전매에 걸리면서 이사를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근처 삼송리 야트막한 언덕 위의 비교적 새 집에 전세로 들어갔다. 추가 비용은 친구가 그 당시 주식까지 팔아서 대주었다.


이 집은 지금 삼송역에서 시장 골목을 지나 군부대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근처의 집들이 다 낡은 옛날 집이었는데 이 집은 전망이 확트인 양옥집이었다. 하루는 낮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불이야!' 하는 소리에 깼다. 잠결에 보니까 집 뒷편의 비닐 하우스에서 불길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엉겁결에 수도 호수를 들고 LPG 통에 불이 붙지 않도록 물을 뿌렸다. 겁을 낼 틈도 없었다. 결국 불길이 잡혀 LPG 통도 온전했다. 만일 그 통이 터졌더라면 대형사고가 날 뻔 했다. 그걸 보고 그 집 할머니가 삼신 할매가 보호해주었다고 말했다. 한 번은 배가 산처럼 부른 아내가 개도 걸리지 않는다는 감기에 걸려 연신 콜록 거리는 거였다. 임신 상태라 약을 먹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민간 요법을 찾아 보았다. 거기에 마늘을 죽으로 만든 다음 꿀을 타 달여서 먹으면 된다고 나와 있다. 그 처방 그대로 마늘 죽을 만들어서 아내가 잔뜩 먹었다. 그랬더니 한 여름에 아내 몸이 불덩이 같아서 밤새 끙끙 앓았다. 다행히 다음 날 감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다.


아무튼 딸 아이를 이 집에서 낳았다. 처음 6개월은 아내와 나 모두 직장을 다녀서 이모가 키워 주었다. 그런데 이모의 몸이 안 좋아져서 불가피하게 집으로 데려와야 했다. 마침 내가 여름 방학이라 6개월 된 딸아이를 봐야 했다. 그런데 애 보는 일이 그렇게 힘든 줄은 처음 알았다. 내가 하는 일은 어떡하든 아이를 잠 재워 놓고 마당을 사이로 떨어진 다른 방에서 당시 막 시작한 컴퓨터로 열심히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그 마당을 엉금 엉금 기어와 문 앞에서 우는 것이다.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가 나니까 그 쪽으로 온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아이와 1주일 동안 씨름을 하다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내한테 크게 한 마디 했다. "당신이 직장 그만 두고 애나 봐!"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애보는 일이 너무 힘들어 해본 소리다. 요즘은 간난 애기 때부터 탁아소에 보낼 수 있었지만 그 당시는 온전히 부모 책임이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아무리 힘들다 해도 요즘 부모들은 천국처럼 느껴진다. 다행히 주인집 할머니가 딸애를 너무나 귀여워 해주셔서 종종 맡기기도 했다. 그래도 딸 애를 보면서 직장을 다닐 수는 없어서 집 근처의 아주머니 한테 맡겼다. 그 집에는 딸 애보다 3살에서 6살이 많은 여자 아이들이 있어서 딸 애가 6살 때까지 잘 컸다. 한 번은 딸 애가 아장 아장 걸음마를 시작할 때 였다. 내리 막 골목길에서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딸 애가 걷는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가 있었나 보다. 아이가 완전 새로운 경험을 한 것이다. 그냥 거침 없이 걸어 내려가다 보니 마침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 자동차럼 질주했다. 내가 놀래서 쫒아가려 했지만 오히려 내 걸음이 부족했다. 아이 좀 잡아 달라는 나의 소리에 다행히 동네 사람이 잡아 주어서 큰 사고는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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