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에서 1990년대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철학자가 쓴 자전적 소설입니다.
006.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10.26 사태 이후 정국은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박정희만 죽으면 유신이 몰락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키운 군부 내 ‘하나회’ 세력은 호시탐탐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은밀히 준비하고 있었다. 12.12 사태틀 통해 당시 계엄사령관을 전격 체포하면서 하나회 수장 전두환이 보안사와 계엄사를 동시에 장악했다. 사실 군사 반란에 버금할 이 사건은 향후 정국 전개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졌지만, 당시 계엄 치하의 언론에는 짤막하게 보도되었을 뿐 야권에서도 크게 이슈화하지를 못했다. 나중에 되돌아보면 그만큼 야당과 재야 세력은 정보에 무지했다고 밖에 할 수가 없는데, 이것이 <서울의 봄>이 무산된 결정적 원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민주화에 대한 의욕은 컸지만 그것을 실현할만한 실력이 없었다.
재야의 김대중은 가택 연금에서 풀려나자 연일 민주 세력의 단합을 이야기하면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김영삼을 위시한 야권도 새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1980년도 신학기가 들어서자 대학가도 이에 발맞춰 불투명한 정국에 우려를 표시하면서 연일 데모했다. 단과 대별로 성토 회의가 열리고 총학은 나름대로 비상 정국을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개 정국은 새봄이 와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달라질 수 없었다. 다만 모를 뿐이었다.
나는 당시 고시 공부하겠다고 법대 기숙사에 들어왔지만 시끄러운 대학 분위기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물론 대부분의 고시생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주구장창 육법전서를 차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처럼 대학의 분위기를 의식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하루는 고시원 총무를 맡고 있던 한 선배가 식사 시간에 일장 훈계했다.
“여러분들, 고시원에 공부하러 왔습니까 아니면 데모하러 왔습니까? 공부하러 왔으면 공부에 열중해야지 왜 바깥세상 분위기에 휩쓸립니까? 그렇게 궁금하면 보따리 싸들고 나가세요. 아니면 옆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다른 원생들에게 최소한 방해를 하지 말아야지요. 우리가 고시를 공부하는 것은 먼 미래의 희망을 위해서인데 왜 자그마한 일에 촐랑댑니까? 앞으로 이런 모습이 보이면 법대 고시원 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처할 겁니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선전 포고다. 데모에 참가하면 가차없이 퇴출시키겠다는 엄포다. 하지만 이에 기죽을 내가 아니다.
“선배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씀 가운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먼 미래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나요? 그리고 지금 학생들 데모하는 것이 아이들 촐랑대는 정도로 뿐이 보이지 않습니까? 평소 존경하는 선배님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니 솔직히 실망스럽습니다.” 내 말이 불쾌했는지 얼굴을 붉힌 그 선배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나는 이야기를 다 했습니다. 위반하는 원생들이 있다면 책임질 것도 생각하세요. 이만!”
고시원 선배 총무와의 이런 논쟁도 어쩌면 부질없는 것인지 모른다. 연일 민주화를 요구하고 전두환 물러나라는 데모 열기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10만여 명의 대규모 데모대가 서울역을 눈앞에 두고 회군했다. 지도부가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 결정에 대해 당시 반대도 많았다. 왜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는가 하면서 아쉬운 표정들을 많이 지었다. 하지만 데모대가 탈취한 경찰 버스에 시민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고, 연일 이어지는 데모 대에 대해 언론과 여론의 피로감도 적지 않았다. 서울역에서 회군한 총학 지도부는 16일 토요일 이대에 집결해서 향후 정국 대비 전국 총학 연석회의를 열었다.(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