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추억은 누가 다 기억할까?
자서전으로서의 소설 쓰기
자서전으로서의 소설 쓰기, 그 많던 추억은 누가 다 기억할까?
- 박완서 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고
소설가는 황제보다 존엄하고 거지보다도 천대받는다. 공산독재국가에서 인종차별받는 흑인도 소설을 쓰는 순간만큼은 소설 속에서 황제도 될 수 있고 거지도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소설가를 꿈꾼다. 나의 일생이 순탄하지 못했다고 생각할수록 이런 욕구는 더 강해진다. “내 이야기를 쓰면 한 편의 대하소설이 나올 걸.”사람들은 말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소설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이 소설 같다는 것과 자신의 삶을 소설로 쓴다는 것. 그 간격은 너무나 넓어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소설가의 길을 포기한다. 하지만 불혹의 나이까지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다 부지불식간 소설가가 된 사람이 있다. 그 많던 추억을 다 기억하고 그 기억을 언어로 다듬어내는 지난한 과정을 참고 견디어내어 기어코 자서전과 같은 장편소설 한 권을 세상에 보란 듯이 내던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소설가가 될 것 같은 찬란한 예감을 하면서 작가는 세상과의 또 다른 한판 승부를 준비하는 것이다.
박적골에서 지천으로 널려 있는 싱아를 마음껏 따먹으며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자라난 나는 집안의 막내로 할아버지의 귀여움과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건강하게 지낸다. 사방에 널려있는 싱아를 간식 삼아 먹는 나는 달콤하고 알싸한 싱아의 맛과 냄새를 통해 고향을 추억하게 된다. 이런 추억은 나중에 서울살이에서 촌뜨기라는 놀림을 받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방학 때마다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서울 놈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나만이 가지고 있다는 우월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서울 서대문 근처 현저동으로 이사하며 도시빈민의 삶이 시작되지만 사직동 친척집으로 위장전입을 시도한 엄마의 교육열로 학교만은 부자들이 다니는 국민학교에 다니게 된다. 양질의 교육과 우수한 교사, 위장전입까지 하며 다니게 되는 학교는 겉으로는 나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주지만 생활수준이 다른 아이들과 융화되지 못하고 겉돌게 되어 아웃사이더로 세상을 바라보고 관찰자로서 추억을 기록하는 삶을 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인왕산 고갯길로 매일 등하교하며 치열하게 학교생활을 하지만 나는 점점 친구들 없이 혼자 공상하며 이야기를 곱씹는 어른 아이로 자란다.
숙명여고를 다닌 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국문과에 입학하며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기회를 가지지만 그해 6월에 발발한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으로 모든 꿈은 무산되고 가족에겐 오빠의 의용군 징발과 같은 시련이 계속된다. 서울 함락에 이은 인민군 치하,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인민군에 대한 협조는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뒤 부메랑이 되어 가족을 위협한다. 숙부는 사형을 당하고 숙모는 사형 직전에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구하고 가족들은 그 과정에서 벌레와 같은 취급을 당하며 지울 수 없는 영혼의 상처를 입게 된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시작된 후퇴, 이들은 다시 피란을 강요받는다. 오빠의 부상으로 피란이 힘들게 되자 가족들은 서울에 와서 처음 터 잡았던 현저동으로 돌아와 삶을 도모한다.
죽음과 같은 시련의 연속, 나는 절망하지만 모두 피란 가고 아무도 남지 않은 수도 서울의 모습을 달동네 꼭대기에서 바라보고 언젠가 소설을 쓰게 될 것 같은 불꽃같은 예감에 삶에 대한 새로운 긍정을 경험하며 자전적 소설은 막을 내리게 된다.
작가는 1931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2차 세계대전, 광복과 연이은 6.25 전쟁, 그리고 끝없이 계속되는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견디어내며 굴곡 많은 삶의 여정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나목”으로 등단하여 소설가의 삶을 살며 늦은 등단을 만회라도 하듯이 2011년 사망할 때까지 끝없이 집필을 한다.
그의 작품 활동의 원천은 어린 시절 먹었던 싱아처럼 잊히지 않는 기억의 파편들이었고, 전란 속에서 그를 괴롭히던 벌레의 기억들이었다. 작가는 이런 모든 기억을 잊지 않고 작품 속에서 녹여내며 한국 현대사를 고스란히 관찰하였던 증인으로서의 책무를 오롯이 해내어 한국 현대문학의 거인이 된 것이다.
기억의 파편들을 가지고 이야기의 집을 짓는 것이 소설의 원형이라고 한다면 한국 현대사의 굴곡은 작가에게는 천운과 같은 행운이었음을 박완서의 작품들은 증명하고 있다. 그가 운명처럼 가지게 된 그 풍부한 기억의 조각들이 한편으로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럽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그가 겪은 인간적인 아픔과 고뇌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문학의 길에 정진했던 위대한 정신의 숭고함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자신의 그 많던 추억들을 기억하고 후회 없이 우리에게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전달해준 후 80여 성상의 인생을 마무리하고 소천(所天)하였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그가 남긴 이야기의 보고 속에서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그 유산 위에서 우리 또한 후손에게 전달할 그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소설이 아니라도 우리 유전자 속에 새겨질 보물 같은 유산이 후손에게 남겨진다면 우리의 삶과 기억은 박완서의 소설처럼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끝없이 회자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