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잠시 쉬려고 숙소로 가는 에노덴을 탔다. 하루에도 여러 번 탈 수 있는 일일 승차권을 샀으나 체력이 따라주지 못했다. 숙소 앞에 호스트 아저씨가 계셔서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내가 여권을 포함한 신상 정보를 이메일로 보내야 하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다. 죄송한 마음으로 일처리를 한 후 조금 쉬고선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에노시마에 갔다.
쇼난 해안가 도로에서 에노시마까지 이어진 다리를 걸으며 10년 새 무엇이 달라지고 그대로인지를 둘러보며 주변 풍광을 눈에 담았다.
20여분 가량 걸어 에노시마 입구에 다다랐다. 엄마는 다 온 줄 아셨지만 실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에스컬레이터 탑승권과 전망대 입장권을 사면서 ‘이와야(岩屋) 동굴‘도 들어갈 수 있느냐고 안내원에게 물었더니 5시가 입장마감이지만 서둘러 가면 들어갈 수 있을 거라 했다. 시계를 보니 4시 30분이었다. 전에 한번 다녀온 터라 그 길을 엄마가 가실 수 있을까 살짝 걱정이 되었으나 엄마를 이끌고 질주하듯 사람들 사이를 헤쳐나갔다. 에스컬레이터를 3번 타고 가파른 계단들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이와야 동굴 입구에 도착하니 5시 5분 전이었다! 땀으로 젖은 몸에 가뿐 숨을 몰아쉬며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엄마를 돌아보며 새삼 엄마의 건강함에 감사했다. 입장 시간을 통과했으니 30분가량 두 개의 동굴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동굴 안에서 무료로 나눠준 촛불 등을 들고 허리를 굽혀 가며 동굴 탐험을 천천히 했다.
고대시대부터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생겨난 이와야 동굴에도 그 오랜 시간을 머금은 신비한 기운이 담겨있다. 그런지 곳곳에 놓여 있는 민속학적 신앙을 보여주는 석상들의 유치함에도 불구하고 섬뜩한 느낌이 든다.
동굴에서 나와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아득해져 왔으나 저물어가는 석양에 모습을 드러낸 후지산을 보니 감탄과 기운이 절로 생겨났다.
넘어가는 해와 함께 어둠이 내리는 계단 길을 숨을 고르며 천천히 오르내렸다. 에노시마 꼭대기에 있는 캔들 전망대 앞 정원에서 우리가 들어갈 차례가 될 때까지 앉아 쉬었다.
전망대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불빛으로 밝혀진 우리가 다녀온 길을 내려다보니 어떻게 다녀왔는지 그저 신통할 따름이었다.
에노시마 신사 입구 앞 길에 늘어서 있는 음식점 중에서 마음이 가는 곳으로 들어갔다. 가게 앞에서 호객하시는 아주머니의 인상이 무척 다정했기 때문이고, 가마쿠라와 에노시마 명물인 ‘시라스돈(しらす丼 멸치 덮밥)’은 꼭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테이블마다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는 데다 한국어까지 지원이 돼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다리는 천근만근이었으나 맛난 저녁으로 배를 채우니 숙소까지 되돌아가는 길이 왠지 아쉬웠다. 에노시마 다리에서 이어진 길은 에노시마 역까지 곧게 이어져 있어 가는 길이 수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