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날
요요기 공원을 빠져나오니 우리가 지나온 넓고 긴 길이 느티나무 가로수 광장 길로 유명하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이런 우연함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다.
길을 건너 경사진 길을 따라 죽 내려가니 할로윈 거리 축제는 없다는 경고문 같은 플랜카드들이 곳곳에 나붙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이태원 사고가 일본에서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거다. 핫플레이스 같은 길 끝에 가려는 곳이 바로 눈에 띄었다.
1953년 도심 속 작은 지상 공원으로 지어진 ‘미야시타(宮下) 공원’은 주차장 위 ‘일본 최초의 공중 정원’으로도 한차례 변모했으나 잦은 지진으로 노후화가 심각해져 오랜 세월 방치되었다가, 미쓰이 부동산이 재개발해 상업시설과 호텔, 주차장이 함께 있는 4층 복합시설로 새롭게 탄생됐다.
시부야를 대표하는 하치코(ハチ公)가 이곳에서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케이트 보드와 비치 발리 등 각종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들이 있어 보는 재미도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니 시원한 생맥주를 생각나게 하는 야외 테이블들이 놓여있어 남편한테 사진을 보내니 예상대로 신나했다. 저녁 때면 더 활기차질 ‘시부야 요코초(渋谷横丁)’였다.
TV에서 일본 소식을 알리며 기자가 서 있곤 하는 시부야역 교차로를 찾아가는데, 수많은 관광객들이 하치코와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길게 서 있는 광경을 보고 무척 놀랐다. 아주 오래 전에 왔을 땐 덩그러니 서 있는 하치코 상이 생각보다 못생겼고 주변엔 담배꽁초가 수두룩해 별로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시부야 경찰서에서 둘러준 띠를 하고 있으니 더욱 늠름해 보이는 ‘충견 하치코’. 하치 이야기가 전 세계에도 알려져 이토록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 기특하기도 했다.
신호음을 기다려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건너가는 시부야 교차로를 찍고 있는데 다들 대놓고 이 광경을 찍고 있어 재미있기도 했다. 특히 스타벅스 창가에 붙어 사진 찍는데 여념 없는 서양 관광객들이 눈길을 끌었다.
점심때가 되어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라는 쇼핑몰로 갔다. ‘시부야 스카이’라는 360도 야외 전망대가 있다고 해 올라갔더니 현장 구매가 이미 다 마감되었다는 거다. 아쉬움을 관광 쇼핑으로 달래는데 다른 곳에 비해 확실히 비싸긴 했어도 왠지 고급스러워 보였다.
하치를 상품화한 코너에서 각종 크기의 인형들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했다. 키링이라도 사 올 걸 하는 후회는 그곳에서만 살 수 있는 일본의 상술 탓이다.
그나마 창가에서 보이는 시부야역 교차로를 바라보며 전망대에 대한 아쉬움을 날려버렸다.
출출해진 배를 쇼핑몰 지하에서 팔고 있는 도시락으로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