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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속 빛나는 오늘

치매에 대한 책과 영화

by 돌레인



‘웬디 미첼’의 <내가 알던 그 사람>에 이어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을 읽고 있다.

웬디 미첼은 58세에 조기 발병 치매 진단을 받았지만, 이후 세 권의 책을 쓰고 치매에 대한 인식을 알리는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 10년 뒤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동시에 그녀의 솔직함과 용기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특히, 그녀가 치매 진단을 받은 나이가 바로 지금 내 나이라는 점이 섬뜩하게 와 닿았다. 엄마를 돌보며 ‘치매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지만, 읽을수록 자연스럽게 내 자신을 책 속 상황에 대입하게 된다.


시인 엘리자베스 비숍이 이렇게 썼죠.

’상실의 기술은 어렵지 않다.
모든 것의 의도가 상실에 있으니
그것들을 잃는대도 재앙은 아니다.‘

전 시인이 아니라 조발성 알츠하이머 환자이지만 매일 상실의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내 태도를 상실하고 목표를 상실하고 잠을 상실하지만 기억을 가장 많이 상실하죠.

전 평생 기억을 쌓아왔습니다.
그것들이 제게 가장 큰 재산이 되었죠.

남편을 처음 만난 그날 밤
저의 첫 책을 손에 들었을 때
아이를 가졌을 때
친구를 사귀었을 때
세계 여행을 했을 때
제가 평생 쌓아온 기억과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들이
이제 모두 사라져갑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지옥같은 고통입니다.
점점 더 심해지죠.

한때 우리의 모습에서 멀어진 우린
우스꽝스럽습니다.
우리의 이상한 행동과 더듬거리는 말투는 우리에 대한 타인의 인식을 바꾸고
스스로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바꿉니다.
우린 바보처럼 무능해지고 우스워집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병이죠.
여느 병과 마찬가지로 원인이 있고
진행되며 치료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 가장 큰 소원은 제 아이들이, 우리의 아이들이,
다음 세대가 이런 일을 겪지 않는 겁니다.

지금 전 살아 있습니다.
전 살아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기억을 못 하는 저 자신을 질책하곤 하지만 행복과 기쁨이 충만한 순간도 있습니다.

제가 고통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예전의 나로 남아있기 위해서죠.

순간을 살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순간을 사는 것과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않는 것
상실의 기술을 배우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는 것
그리고 끝까지 놓기 싫은 한 가지는 오늘 이곳에서의 기억이지만 결국 사라지겠죠.
저도 압니다.
내일 사라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오늘 이 자리는 제게 큰 의미입니다.
의사소통에 푹 빠져있던 예전의 제겐 말이죠.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 <스틸 앨리스>


책을 통해 알게 된 ‘줄리안 무어’ 주연의 영화 <스틸 앨리스(Still Alice)>도 넷플릭스로 시청했다.

치매를 경험한 당사자와 그 가족의 심리를 섬세하게 담아낸 영화였기에, 책의 내용과 맞물려 가슴이 먹먹해졌다.



책과 영화를 통해, 치매에 대해 더 알고 준비하며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지금의 일상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엄마를 돌보는 나날 속에서도, 웬디 미첼의 이야기는 나에게 ‘마음을 다스리고, 준비하고, 이해하며 살아가기’의 의미를 깊게 남긴다. 그리고 엄마를 더 이해하고 소통하려 마음을 다잡는다.


치매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든 우리 삶에 찾아올 수 있는 현실임을 그녀의 기록은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일깨워준다.




순간을 위해 살아요.
이제는 계획을 세우지 않지요.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그냥 즐겨요.

<내가 알던 그 사람>, 웬디 미첼이 줄리안 무어에게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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