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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N Hayley Nov 30. 2021

신규 간호사가 본 "코드 블루"  

어느 간호사의 고백 #2 

드디어 기다림 끝에 병동 발령을 받았다. 내가 배치받은 병동은 외과병동이다.

흉부외과, 성형외과, 일반 외과 등 수술할 수 있는 여러 외과가 존재한다. 

주로 흉부외과와 성형외과가 메인이다. 

출근한 지 4일째에 '프리셉터'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프리셉터란 한마디로 '멘토'같은 거다.

시스템적인 일부터 기본간호, 약, 간호실무 등 전반적으로 밀착 과외를 해주는 간호사이다. 

보통 병동에서 4년 정도 일하면 처음 프리셉터의 자격이 주어진다. 

내 프리셉터 선생님은 입사 4년 차로 프셉을 해 본 지 얼마 안 되신 분으로 굉장히 교육에 열정이 넘치시고,

우리 병동에서 제일가게 꼼꼼하시며 성격이 급하고 항상 모든 일을 미리미리 하는 분이시다. 

덕분에, 나는 일을 밀리지 않고 미리미리 하는 습관이 들어질 예정이며, 퇴근 시간 10분 전까지 선생님의 

세심하고 꼼꼼한 교육을 들을 수 있다.(사실 퇴근 직전까지 배우는 건 머리가 터질 것처럼 힘들다) 

또 성격도 좋으시고 환자분들에게도 친절하시다. 

나한테도 용기도 주시고 때로는 따끔하게 지적도 하시는 최고의 선생님이다.    

  


그런데, 병동에서 일한 지 4일 차, 프리셉터를 만난 지 첫날에 사건이 발생했다. 

EVENING근무(오후 3시부터 11시까지)를 하던 중, 퇴근하기 직전에 조용하던 병동에 큰 소리가 났다.

내 프셉과 나는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출처를 알아보던 중, 2호실에 준 중환자인 환자에게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러 경력 있는 선생님들이 들어가시더니 환자가 침대체 나오는데, 한 간호사 선생님이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침대체 나오고 있었다. 그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이 상황은 당연히 말로만 듣던 "코드 블루" 심정지 상태였다.  

"코드 블루 방송해! 신속대응팀 불러!" 

병실 안은 이미 시끄러웠고, 선생님들이 하나둘씩 모이며 일을 돕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코드 블루 방송을 전화로 신청했고, 곧바로 사이렌 소리와 함께 "00 병동 코드블루, 코드블루" 하는 소리가 재차 반복되었다. 내 인생의 첫 코드블루를 이렇게 보게 되었다.

곧바로 당직의사들이 우리 병동으로 뛰어들어왔다. 

이브닝 팀과 나이트 팀 간호사들이 인계를 하는 시점이라 간호사들은 굉장히 많았다. 

환자를 처치실로 빼는 데까지 굉장히 긴박했고, 의사들이 와서 심폐소생술을 이어받았다. 

우리가 그토록 배웠던 가슴압박을 실시하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상황을 지휘하는 한 의사가 무슨 무슨 약물을 주라, 산소를 주라 등등 지시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나도 돕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화받는 것조차도 내가 받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것은 환자의 낯빛이 시꺼먼 색이었다. 

신규 간호사가 본 코드블루는 굉장히 적나라하고 무섭고 슬프기까지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때 한 간호사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은 여기 서서 콜벨이 울리는지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내가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다른 환자들이 혹여 간호사를 부르지 않나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게 간호사 스테이션 앞에서 서서 코드 블루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러던 중 옆에 있던 보호자가 눈물을 훔치며, 근처에 있는 가족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10분 내로 도착하자 "아이고, 00 아빠.." 하면서 펑펑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안전요원이 환자의 심폐소생술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들을 문 밖으로 안내하였다.

그때 나는 눈물이 앞을 가릴 뻔한 것을 꾹 참았다. 그 상황에선 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생판 모르는 남이지만 그 환자가 제발 살아서 돌아오길 바랬다. 

산소포화도랑 호흡수는 떨어지고 맥박은 미친 듯이 뛰고 혈압은 불안정하고.. 모니터를 보면서 기도했다.

'제발 이 환자 살려주세요.' 그 와중에 상황은 긴박하고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었으며, 옆에서는 

한 선생님이 계속해서 기록을 넣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상황은 마무리가 되었고 (사실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는지 자세히 보지 못했다.)

환자는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어 병동 처치실에 하루 정도 있었어야 했다. 

나는 11시가 조금 넘어서 퇴근했다. 

선생님들은 11시 넘어서도 응급 카트와 주변 정리하고, 기록을 확인하느라 퇴근을 못했고 나를 먼저 퇴근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나는 혼자 퇴근하게 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간호사 혹은 의료진이라는 직업이 결코 가볍지 않은 직업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우리의 손 하나에 환자의 생사가 달릴 수 있으며, 그러므로 수시로 환자들을 살피고, 환자의 말을 귀담아듣고, 우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꼼꼼하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은 굉장히 슬프고도 강렬한 날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소식을 들었는데, 그 환자분은 중환자실에서 조금 있다가 결국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고, 마음 한편이 먹먹하고 숙연해지는 기분이었다. 

 

'신규 간호사가 본 첫 코드블루'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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