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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N Hayley Feb 18. 2022

신규 간호사 두 명이 그만뒀습니다.

어느 간호사의 고백#5 <구관이 명관이다.>

 흔한 화요일 데이 근무 중이었다. 평일 데이 근무는 항상 바쁘고 정신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나름 평화로웠다. 나름 일도 적응해가고 지옥 같던 나날들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일하던 중 테이프가 떨어져서 수선생님 방에 들어가려고 노크를 하기 전까지는 별일 없는 화요일이었다. 

먼가 느낌이 이상했다. 평소와 달리 수선생님 방이 닫혀있었고, 마치 상담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 들어가려고 했으나 테이프가 꼭 필요했다. 


 똑똑. "죄송한데 테이프가 다 떨어져서요."

"어 테이프 여깄어" 하며 수선생님은 테이프 두 개를 주셨다. 

그리고 수선생님 앞에 이제 막 독립한 두 신규 간호사들이 앉아있었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 심각한데 이거. 얘네들 그만두겠구나.' 

그리고 돌아가서 내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얘들아. 큰일 났어. 듀티 변경해야 할 거야. 신규 두 명이 나간다고 한 거 있지 동시에 둘 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번 신규 두 명이요?"

"그래 내가 1시간 동안 설득했는데, 로테이션도 싫고 이번 달 말까지 일하기도 싫대."

"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당장 오늘 나이트 근무인데.. 이번 듀티까지는 일해야지.." 

"그러게. 확고해. 달래보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했는데 안 먹혀. 이번 달까지만 해달래도 그냥 죄송하대."

"이렇게 무책임한 경우가 어딨어요? 둘이 동시에 그만두는 건 또 처음 보네."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요즘 별일 없잖아. 환자도 적게 보고."

"오늘 아침까지 근무했는데 아무런 일 없었어요."

"이런 일 작년에는 더 심했어요. 하도 애들이 응사(응급 사직)해서."

 수 선생님은 스테이션에 와서 이 사실을 알리며 선생님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했다.

금세 병동에 이 얘기가 퍼졌고, 선생님들은 그 두 명의 무책임함과 갑작스러움에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다. 

나 역시 그 말을 듣고 충격적이긴 했다. 같은 신규로서 이해는 가지만 정말 독립한 지 일주일도 안 되었기에.

그러면서 수선생님이 모두들 앞에서 말씀해주셨다. 

"얘 우리 OO 이한테 잘해야겠다. 다들 잘해줘. OO아 넌 그러면 안 된다."

약간 반 협박같이 들렸지만 민망하기도 하고 얼떨떨했다. 


 그 두 명의 응급 사직은 우리에게 바로 영향을 끼쳤다. 일단 나부터 말하자면, 오프가 하나 잘리고, 이브닝 듀티가 하나 더 늘고, 이브닝에서 데이로 듀티가 한 개 변경되었다. 결코 행복한 결말은 아니다. 

몇몇 다른 선생님들도 오프가 잘렸거나 변경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얼마나 입방아에 오르는지 옆에서 계속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직장에서 그렇듯이 뒷담은 항상 나온다. 특히 가장 최근에 들어온 신규일수록 아직 유대감 형성이 덜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 적응을 못해서 일을 잘 못하니 더 뒷담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 병동, 병원도 그렇다. 어느 병원과 같이. 내 생각엔 생각보다 심한 것 같진 않다.(아직 내 얘기를 직접 안 들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듣고 싶지도 않지만 물론 내 얘기도 뒤에서 하는 걸 알고 있다.)


  나 역시 독립한 지 일주일 만에 데이 근무를 하면서 일이 너무 버겁고 정신없고 시간에 쫓기고, 내가 프리셉터 선생님을 옆에서 지켜본 것보다 실제로 해보니 훨씬 바쁘고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하필 환자들도 상태가 안 좋거나, 요구하는 정도가 높은 분들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더욱 힘들었다. 

밥은커녕 물을 먹을 시간도 없고, 일을 당연히 제시간에 못 끝냈으니, 뒷번 선생님한테 호되게 혼났으며, 내 예상보다 일을 훨씬 못해서 스스로에게 실망과 충격을 받았었다. 

 

 독립하지 전에 혼자 환자를 본 경험이 적었으며, 환자를 10명을 보고, 수술을 2명 보내니 너무 숨이 벅찼다. 

집 가서도 엉엉 울고, 일하면서도 울고, 말 그대로, out of control인 기분이 감당이 안됐다. 

Burn-out증상이 나타났고, 우울증처럼 한 달간은 그만두고 싶어서 퇴사할지, 응급 사직할지 고민하며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내가 이 일이 나름 할만하다고 느낀 게 불과 일주일밖에 안된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나도 그들처럼 응급 사직할까 매일 고민하며 일터에 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일이 늘었다. 신기하게도. 그리고 운이 좋아졌다. 환자도 덜 타고(힘든 환자를 덜 맡고) 

나를 도와주는 선생님들이 생기고, 선생님들과 유대감도 쌓았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듯이, 일이 정말로 할만해졌다. 

그리고 신규 간호사 두 명이 트레이닝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일손이 늘어 환자를 보는 수가 줄어들었다. 

정말인지 요즘 할만했다. 그들이 갑자기 관두기 전까지. 그 사이 일주일 동안은 정말 괜찮았는데 아쉬웠다.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나 역시 퇴사를 고민했으니까. 

 갑자기 독립하면 엄청난 책임감과 옆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직접 환자를 맡아서 간호하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훨씬 바쁘고 어렵고 출근하기 두렵다. 

 그렇지만 일주일 만에 그것도 둘이 동시에 동반퇴사? 동반 응급 사직을 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 

요즘같이 환자를 적게 보는 괜찮은 시기에 갑자기 몇 번 안 해보고 그만두다니. 많이 아쉽다. 

나야 괜찮지만, 가르친 선생님들은 보람도 없을 것이다. 


 이 기회에 깨달았다. 혹여, 내가 그만두더라도, 갑자기 응급 사직은 하지 않겠다는 것을. 

누군가 나를 죽일 듯이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응급 사직은 남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실례인 것 같다. 

그만두는 것은 이해한다. 누구나 그럴 수 있고, 그만두면서 남은 사람들을 생각해주라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고서, 그저 일이 벅차서, 싫어서, 두려워서 무서워서라면 조금만 참았으면 좋겠다. 이 일이 분명 보람되고 고마운 경우도 있다. 요즘같이 취업하기 힘든 경우에 말이다. 

 적어도 남은 스케줄을 채우고 가면 당시에 비난을 바로 앞에서 들을 수도 있지만, 훨씬 나은 선택일 것이다. 

병원 자체가 너무 싫어서 떠난다면 이해가 가나, 다른 병원을 찾는다면, 다음 선택지는 더 나을지는 미지수이다.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다음 선택지는 더욱 힘들 수 있다. 

과거에 악착같이 버텼으면 더 힘든 곳에서도 살아남을 수도 있으나, 그러지 않았다면, 각오해야겠다. 


 난 진심으로 그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나야 듀티 좀 바뀌고 하루 안 쉬면 그만이지만,

그들은 그들의 선택으로 더 나은 미래를 걸었으면 좋겠다. 더 좋은 곳에서 더 편하게 일하면 좋겠다. 

그들이 그만둔 것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한국의 간호사회가 개선되어야 한다. 

 많이 개선되고 좋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결함이 많다. 

그렇지만 사회초년생들이 흔히 겪는 실수는 '완벽한 직장' 혹은 이상적인 '워라밸'을 꿈꾼다. 나 역시도 그랬다. 'no pain, no gain', '고진감래'와 같은 격언들처럼 '고통 없이는 성장도 없다.'

나는 과감히 그 고통을 받아들이고 배우고 즐기련다. 

언젠가 이 힘들었던 순가들이 성장의 디딤돌이 되길 바라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두 명은 결국 다른 병동으로 로테이션 갔다고 한다. 병원에서 이직률을 낮으려고 제안을 한 것이다. 만일 그들이 찢어져서 다른 병동으로 갔다면, 그곳에서 이미 소문이 다 난 채로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데, 아마 얼마 안가 그만둘 것 같다. 

 내가 이 단어를 좋아하게 될지 몰랐으나, '구관이 명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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