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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준 Sep 19. 2021

경계를 뒤넘어


- Yesterday All my troubles - seemed so far away -  
비틀즈의 노래는 무슨 일이 있어도 LP판으로만 듣는다. 나의 오래된 철칙이다. LP판이 없으면 카세트 테이프라도 있어야 한다. 남들은 쓸데없는 고집이라 한다. 멍청한 것들. 그들은 둘은 커녕 하나도 모른다. 디지털 음원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소리를 들려준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어디서나.


 똑같은 소리는 죽은 소리다. 소리는 시간, 장소, 인물과 함께 달라져야 한다. 턴테이블의 바늘은 LP판에 쌓인 먼지를 긁고 지나가며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오는 , 테이프가  늘어진 라디오에서는 낮고 둔한 소리가 난다. 때마다 달라지는 소리들은 완전하지 않음으로써 완전해진다.


욕조의 물이 따듯하다.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어 부드러워진다. 온도계로 3분에  번씩 체크하고 수도꼭지를 이리저리 돌리며 고생한 보람이 있다. 귀찮은  질색이지만 오늘은 그럴 가치가 있었다. 아침부터 기분이 상쾌한 것이 진짜   있을 것만 같았다. 이날을 놓칠  없다.  
 



- Why she had to go, I don’t know –
-치지직.. 끊어지는 테이프 소리를 머금은 폴 매카트니의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노래가 벌써 중반에 다다랐다. 화장실 근처에 콘센트가 없어 턴테이블을 가져올 수 없었다. 마지막 Yesterday를 LP판으로 들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완벽한 날, 하나의 흠이다. 온 집안을 뒤지고 나서야 드레스룸에 처박혀 있던 라디오를 찾을 수 있었다. 2년 전 그녀가 사줬던 것이자 나의 7번째 시도를 함께한 녀석이다. 7번째에는 번개탄을 사용했었다. 가스밸브를 튼 후 수면제를 먹는 것이 훨씬 깔끔한 선택일 것이었지만 이웃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진 않았다. 죽은 자에 대한 산 자들의 평가는 대체로 후한 편이지만 그건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이들만의 것이다. 자살, 게다가 민폐스러운 죽음. 매도 당할 게 뻔하다. 나는 주변인들의 평가를 꽤 중시하는 사람이었고 결국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웠다. 카세트테이프로 비틀즈의 노래를 튼 채로.
맵고 뜨거운 연기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콜록. 기침이 났다. 곧 숨이 막혀 그마저도 나지 않았다. 성공할 줄 알았다. 약속을 지킬 수 있을 줄 알았다.
아쉽게도 그날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눈앞까지 다가온 죽음이 무서워서는 아니었다. 다만, 정신을 잃기 직전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가는 것이 차 창문 밖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흰색 바탕에 노랑과 검은색 털이 섞인 삼색이. 귀여웠다. 고양이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죽고 싶은 마음이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문을 열고 뛰쳐나간 후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 콧물 온갖 분비물을 쏟아냈다. 고양이는 지나가고 없었다.




라디오를 사준 그녀는 나랑 비슷한 부류의 인간이었다. 우린 젊은 나이에 비해 취향이 올드했다. 힙합 대신 소프트록을 듣고 후드티 대신 가디건을 걸쳤으며 마지막으로 둘 다 위스키를 좋아했다. 늦은 밤, 그녀와 함께 연희동에 있는 위스키바에 자주 가곤 했다. 그녀는 위스키라면 블랜디드, 버번, 스카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마셨지만 그중 피트 위스키를 제일 사랑했다. 지푸라기 태우는 듯이 매운 냄새를 풍기는 그 위스키는 호불호가 명확한 술이었지만 그녀는 피트라면 언제나 호를 외쳤다. 언젠가 그녀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도대체 피트 위스키의 어떤 점이 좋냐고. 그녀는 내 물음에 말없이 찡긋 웃은 후 따듯한 물 몇 방울을 위스키 잔에 떨어뜨렸다. 차갑게 가라앉았던 위스키에 약한 대류가 일어났고 진한 알콜 냄새가 잔에서 흘러나왔다.
나의 8번째와 9번째에는 위스키가 함께 했었다. 동네의 약국을 돌며 수면제를 긁어모았다. 의사 처방이 필요하지 않는 저용량의 수면제를 한 알.. 한 알.. 그렇게 3주를 모으다 보니 어느새 오십 알이 되어있었다. 영원한 잠에 들고 싶다. 깨어나는 것 괴롭다. 없는 이의 존재를 자각한다는 것이 두렵다.  
뻣뻣이 굳은 내 시체가 집안에서 부패하고, 부풀고, 최후에는 ‘펑’ 터져버리는 것만큼은 끔찍이도 싫었기에 내 지인에게 예약 메시지를 걸었다, 예약 메시지에는 별 내용이 없었다. 다만 ‘저는 자살했습니다. 사후 처리를 도와주면 모든 유산을 당신에게 넘길 것을 약속합니다.’라는 문구를 써 놓았을 뿐이었다.
50알을 집어삼켰다. 무더기의 알약에 식도가 눌려 숨이 턱 막혔다. 아래에서부터 역류하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위스키를 다시 한번 목구멍으로 들이부었다.
속이 메스꺼웠다. 정신이 아득하니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잠이 몰려왔다. 늘 자던 잠과는 결이 다른... 그런 잠이었다. 십오촉 전등이 어느 순간 ‘퍽 소리를 내며 꺼져버리는 것이 평범한 잠과 같다면 수면제 50알과 위스키가 만들어내는 잠은 심지가 다 탄 촛불이 점점 사그라드는 것과 같았다. 촛불의 불이 꺼지기 직전 예약 메시지에 넣어야 했던 중요한 내용이 생각났다. -아, 삼베 수의 대신 슈트 입혀달라고 해야 하는데. 가까스로 잠을 약간 몰아낸 후 기어서 화장실에 도착했다. 그리곤 전부 게워냈다. 알약도. 위스키도.
 



그 후로도 종종 자살을 시도했다. 목을 매거나, 달려오는 차량에 몸을 던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지만 늘 실패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매 죽음 직전, 사소한 것들이 갑자기 생각나 그녀에게로 가려는 내 발목을 잡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꽤 사랑했고 그녀도 나를 꽤 사랑했다. 그리고 우리 꽤 행복했다. 하지만 그 ‘꽤’는 철저히 상대적인 부사어였다. 나의 ‘꽤’가 ‘무척’에 가까웠다면 그녀의 것은 ‘나름’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나름’은 그녀에게 삶에 대한 의지가 되지 못했다. 그녀가 죽기 전날 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위스키바에서 술을 마셨다. 볼이 빨개진 그녀가 물었다. -내가 어딜 가던 같이 있어줄 거야?  나는 대답했다. –응.
 



- Now I need a place to hide away –
노래가 끝나간다.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새로 산 커터 칼을 꺼낸다.
‘쓱..’ 무엇인가 베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투명했던 욕조 안이 붉은색으로 물들어간다. 물속에 선명하게 잠겨있던 하반신이 점차 보이지 않는다. 물이 점차 탁해질수록 내 몸을 이등분하는 경계가 생겨나고 생과 사의 경계를 뒤넘던 내 영혼에도 경계가 그어진다. 이쪽은 삶, 저쪽은 죽음. 이쪽은 나, 저쪽은 그녀. 선택의 갈림길.
경계를 넘기 직전 무엇인가 욕조로 굴러 떨어졌다. 그녀가 골동품점에서 사준 89년식 라디오. 라디오가 핏빛 물에서 잠길수록 폴 매카트니의 목소리는 점차 옅어진다.
옆에 걸려있던 수건을 낚아채 손목에 꽉 둘렀다.
죽음이 무서워서 그런 것은 정말 아니다. 다만, 라디오가 고장 난 것이 맘에 안 들어서 그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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