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낙타들의 아침식사
지난시간을 떠올려보면 행복한 기억이 정말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다. 대부분이 행복한 기억이다.
고소한 밥 냄새와 그릇 부딪치는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깼다. 우리 집 아침이 시작되었다. 맨발로 아침 공기를 박차며 활기차게 일어났다. 할머니, 아빠, 나, 세 식구는 아침식사만큼은 함께 했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늦잠 한 번 자지 않았다.
어김없이 밥이 끓어오르는 냄새에 구수한 배추된장국 냄새까지 어울려 내 빈속을 자극했다. 이 냄새는 아주 오래전부터 맡아왔다. 아주 오랜 후에도 내 곁에 머물 것이다. 행복에도 냄새가 있는데, 바로 이 냄새다.
아침 샤워를 하던 중에 문득, 그날이 생각났다.
회사 복도난간에 서 있을 때 할머니가 떠올라서 가슴이 미어지던 그날. 그 직장이 하데스로 내려가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구한 직장이었다는 생각은 두 번째였다. 내가 백수가 되면 할머니가 얼마나 상심할까 생각하니 피가 싸늘히 식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정말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직장을 걷어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나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정말로 어쩔 수 없었다. 견딜 만큼 견뎠다고, 나는 지금도 주장하고 싶다. 참을 만큼 참았다는 말이다. 내 자리와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한나절 동안 깊게 생각했다. 그 한나절은 내가 인생의 길을 새롭게 선택하기에 충분한, 정말로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의 참을성을 다른 사람의 참을성과 비교하지는 마라. 그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참을성을 수량화할 수 없지 않나. 수량화할 수 없는 참을성을 어찌 비교한단 말인가. 남들은 잘도 참는데…… 라거나, 누구나 다 참고 사는데…… 라거나, 직장이란 억지로 참고 다니는 건데…… 같은 말들은 나에게 아무런 설득력이 없었다. 그런 말로 나의 후회나 죄책감 따위를 불러내려는 노력이야말로 헛되고도 헛된 짓이다.
내가 성깔 있는 사람이라고? 욱 하는 성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해라. 나는 내가 인내심이 있고 겸손하며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인내심이라고 하면 곰이 떠오른다. 긴 시련을 견뎌내어 인간이 된 곰, 웅녀. 단군신화에서 말하는 인간의 개념은 ‘인내하는 인간’이다. 인간을 호모사피엔스 ․ 호모파베르 등등으로 정의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인내심을 인간의 첫째 조건으로 꼽았다. 인간이 되고 싶으면 인내하라. 인간이란 인내하는 존재다. 나는 명명백백 단군의 자손이므로, 나 또한 인내심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두 말할 필요 없이 나는 인내하는 인간이다.
내가 회사에서 견딜 만큼 견디다가 그만두었다고 해서, 지금의 구차한 생활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간신히 버티는 주제라는 사실을 늘 자각하고 있었다. 할머니 마음을 겨자씨만큼이라도 아프게 하지 않겠다던 내 다짐이 나를 가장 부끄럽게 했다.
아침 샤워를 재빨리 마치고 식탁에 앉았다.
어제부터 아빠가 지방출장 중이라, 할머니와 둘이서 아침밥을 먹었다. 할머니와 아빠와 나,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아침밥을 먹을 때 나는 꼭 낙타들 같다고 생각했다. 밥그릇을 내려다보는 목덜미가 길고 순했다. 할머니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다. 나도 분명 그럴 것이다. 할머니가 해주는 밥이 맛있기 때문이다.
지금 할머니와 나도 낙타다. 낙타들의 맛있는 아침 식사.
아빠는 지방출장이 부쩍 잦아졌다. 나이도 들어가는데, 객지 출장이 고단할 것이다. 무엇보다 집밥을 먹지 못하는 게 제일 괴로울 거다. 할머니가 차려주는 식사는 밥만 떠먹어도 그냥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갔다. 나는 밥투정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밥투정이라니, 말도 안 된다. 할머니 밥이 어떤 밥인데. 할머니 밥맛에 완전히 중독되어서, 며칠간 할머니 밥을 먹지 못하면 기운이 떨어지고 우울해지고 만다. 할머니가 지은 고소한 밥 냄새는 토라진 신의 마음도 돌이키게 할 거 같다.
나는 입부터 크게 벌리고 배추된장국의 국물을 떠먹었다. 멸치된장국물이 시원하고 깔끔했다. 국그릇 속의 푹 익은 배춧잎들을 휘저어 보았다. 숟가락에 감겨드는 야들야들한 느낌이 단번에 내 혀로 전달되었다. 나는 곧바로 배춧잎을 건져 올려 입으로 가져갔다. 부드럽고 여린 배춧잎이 혀에 감기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고 말았다. 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오늘따라 할머니의 콧대가 더욱 높아 보였다. 할머니가 조금 야위었나? 할머니의 코가 유독 날카로워 보였고, 미간의 주름도 더 깊어졌다.
“오늘도 늦냐? 종종 늦는 걸 보니 만나는 녀석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거냐?”
할머니가 국에 밥을 말았다.
나도 국에 밥을 말면서 네, 라고 대답했다.
“결혼 생각이 있는 놈이냐?”
“결혼은 무슨……, 아냐.”
나는 국밥을 한 숟가락 떠올렸다. 숟가락이 입으로 세차게 끌려갔다. 국밥을 퍼올리는 내 수저질은 빠르기도 빨랐다.
유부남이냐? 라고 할머니가 물었고, 나는 무슨 소리냐며 정색했다. 그런데 왜 결혼할 놈이 못 되는 거냐고 할머니가 물었고, 내가 결혼할 나이도 결혼할 처지도 아니라고 생쥐처럼 작은 소리로 우물댔다.
“니 나이가 몇인데, 결혼할 나이가 아냐?”
“내 나이가 왜? 아직 멀었지.”
나도 제법 큰 소리로 말대꾸했다. 혹시 할머니가 버럭 소리칠까봐 다시 생쥐가 되어, 걔도…… 백수 비슷해, 라고 간신히 우물댔다. 남자친구인 용태가 완전백수는 아니지만, 비정규직 영업일을 하고 있어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처지였다. 인조나무, 그러니까 가짜나무를 마트나 백화점, 카페 등으로 판매하러 다니는 일이라고 한다. 용태는 자신의 업무에 대해 자세하게 얘기해주지 않는다. 그 일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럴 거라고 짐작한다.
“쯧쯧……. 잘들 한다.”
할머니가 식탁에서 일어섰다. 눈두덩이의 주름이 어느새 더 늘어져 있었다. 할머니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몸도 쉬어야 하지만, 가장 먼저 쉬어야 하는 건 걱정이었다. 할머니의 가장 큰 걱정덩어리는 바로 나였다. 눈앞의 걱정덩어리는 밥 하나는 거침없이 잘도 먹어댔다.
내가 집안일을 도우려고 하면 할머니는 나를 집 밖으로 쫓아냈다. 다 큰 게 집안에 있지 말라고. 주말에만 집안일을 도우면 된다고. 할머니에게는 장롱 깊숙이 감춰놓은 ‘두루미’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당금애기의 아기들을 돌봐주던 그 하얀 두루미. 내가 집에 없을 때는 두루미가 김치도 담그고 아버지 옷가지도 다림질할 것이다. 베란다 화분들에 물과 비료도 주고, 종종 달걀 거품을 잔뜩 일으켜 카스텔라도 만들 것이다. 때로는 할머니의 피로와 몸살과 걱정도 새하얀 깃털로 닦아줄 것이다. 우리 세 식구가 사는 이 집에 먼지 한 톨 없도록 새하얀 깃털로 닦을 것이다. 결벽증에 걸려 있는 두루미.
나는 할머니의 걱정을 듣고도 밥그릇과 국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할머니의 걱정은 걱정이었고, 밥은 밥이었다. 식탁을 치우고 빈 그릇과 수저를 싱크대에 담았다. 손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할머니에게 말할까 망설였다. 사실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고. 밤마다 끙끙대는 일이 따로 있다고. 바로 저번 주에 결심했다고. 의기양양한 기분에 일순 휩싸였다가, 곧바로 의기소침해졌다. 가슴 밑바닥에서 그을음 같은 탄식이 터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