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르mihr Aug 03. 2024

버스를 놓쳤다...

안 가본 곳에 가야 해서 집을 나서며 맵으로 경로를 탐색하고 버스 번호를 확인했다. 마침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었다. 길 건너 정류장으로 가야 해서, 지나가는 차들이 빗물을 뿌리고 갈까 봐 찻길에서 멀찍이 떨어져 조심조심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그때 길 건너편에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오고 있는 게 보였다.


마음이 급해졌다. 신호를 무시하고 그냥 길을 건너갈까? 그러자니 빗물을 튕기며 지나가는 차들이 많고, 또 함께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눈총도 따가울 것 같다. 다행히 신호가 먼저 바뀌었고, 버스는 아직 정류장에 서 있었다. 빗물이 튈까 조심하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나는 버스를 향해 달려가면서 우산을 들지 않은 남은 한 손으로 버스를 향해 손도 흔들었다. 나를 꼭 좀 태워가요!


그런데, 아뿔싸. 내가 정확히 버스 앞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보란 듯이 바로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봐도 이건 정황상, 버스 기사가 나를 골탕 먹인 게 틀림없었다. 우산을 들고 종종거리며 빗속을 달려가는 내가 보이지 않았을 리 없다! 순간 화가 솟구쳤다. 우~씨! 버스 회사에 항의 전화를 해?


그런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는데, 곧 다른 버스가 도착했다. 그런데, 오잉? 다시 눈을 잘 뜨고 보니 내가 타야 할 버스는, 나를 골탕 먹이고 떠나버린 버스가 아니라, 막 도착한 바로 그 버스가 아닌가? 떠나버린 버스 기사에게 샘솟던 화는, 그 즉시 고마움으로 바뀌어버렸다. 엉뚱한 버스인 줄도 모르고 뛰어간 나를, 버스 기사가 골탕 먹여주어서 이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


때로는 붙잡기 위해 열심히 뛰어간 버스를 눈앞에서 놓치는 게, 실상 가려던 곳으로 가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을 배운 날이었다. 그게 벌써 일주일 전의 일이다. 그리고 생협 매장활동가 수습 기간이 종료되면서, 매장에서 일하는 활동가로서는 내가 '매우 부적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어제 해고되었다는 이야기를, 조금 길~게 해봤다. 흠. 나를 제대로 데려가 줄 버스가 곧 또 오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집을 나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