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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Moreau Jul 11. 2024

집을 나갔다

똑같이 다섯 시간을 일해도, 오전 근무보다 오후 근무가 힘든 게 쫌 이상했다. 심지어 오후 근무는 영업시간에 맞추기 위해 급박하게 물품을 집품해야하는 오전 시간만큼 일이 바쁜 것도 아닌데, 왜지?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니, 오후 근무인 날마다 오전 동안 (육체노동인) 집안일을 실~컷 한 뒤에 (다시 육체노동을 하러) 출근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오후 근무였던 오늘 아침에는, (일 시키는) 집을 탈주해 도서관으로 갔다.


정말 오랜만에, 도서관에 앉아 책과 노트북을 펼쳐놓고, 오직 읽고 쓰기만 하니깐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한 것이 아닌가! 두어 시간을 그렇게 집중하고 나니, 슬슬 출출해졌다. 내 근무지는 도서관과 집의 딱 중간쯤 에 있다. 출근 전 더운데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갔다 오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뭔가를 사 먹는 것도 내키지 않아 아침에 집에서 간단하게 유부초밥 도시락을 싸왔다. 도서관 지하에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휴게실이 있지만 창문도 없고 분위기도 별로여서, 근처 단골 카페에서 아이스라테 한 잔을 사들고 도서관 옆 공원으로 향했다.


며칠 동안 비가 오다가, 오늘은 마침 해가 쨍하고 났다. 공원 옆으로 가느다란 실개천이 하나 흘러가는데 나무 숲에서 그 개천을 내려다볼 수 있는 벤치가 몇 개 있다. 그중 하나에 앉아, 도시락으로 싸 온 유부초밥을 먹는다. 마치 소풍 나온 것 같았다. 시원한 아이스라테도 한 모금씩 빨아먹었다. 그때마다, 나무 그늘 사이로 불어오는 실개천의 바람이 조금씩 더 시원해졌다. 원래는 도시락만 먹고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바람도 시원하고 실개천의 불어난 물소리도 듣기 좋아서 근무 시간 전까지 그 자리에 있기로 한다.


*


같은 벤치에 계속 앉아서,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 '그르누이'가 세계의 온갖 냄새를 탐욕스럽게 탐색하는 묘사를 읽는데, 스피노자를 너무 진지하게 읽어서 그런가, 사람들의 말과 행위 속에서 온갖 관념을 탐색하는 내 모습이 겹쳐졌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이미 익숙해져 그게 있는지도 모르는 그러나 세계에 실존하는 온갖 향기.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너무 익숙해지거나 혼합되어 개별적으로 인식하거나 감응하지 못하지만 분명 우리 정신(과 신체) 안에 실재하는 관념들. 그것들은 매우 닮은 것 같다.


그렇게 책 속의 묘사를 아주 천천히 따라 읽는 데, 비둘기 한 마리가 뒤뚱거리며 내 앞을 지나 옆의 벤치로 가고 있다. 옆 벤치에는 중년과 노년 사이의 깡마른 남성이 홀로 앉아있었다. 그는 뒤뚱거리며 다가오는 비둘기를 보더니 흙바닥에서 작은 돌멩이를 살며시 주워 들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비둘기를 향해 그 돌멩이를 던지는 게 아닌가? 나는 놀라서, 비둘기가 돌멩이에 맞았는지 아니면 돌멩이가 빗나갔는지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 비둘기는 별일 아니라는 듯, 한번 훌쩍 날아오르다가 개의치 않고 또다시 남자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때 어디선가 비둘기 친구들이 떼로 몰려왔다. 설마 친구들이 그 남자에게 복수하려고? 상상했지만, 비둘기들은 그저 얌전히 그 남자에게 다가갈 뿐이었다. 왤까? 잠깐 생각해 보니, 비둘기에게 돌을 던지는 남자의 모습은 공원에서 가끔 만나던,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뿌려주는 할머니의 몸짓과 비슷했다. 멀리서 온 비둘기들은 그 남자가 친구에게 돌이 아니라 먹이를 뿌려준 줄 알았던 것인가? 그 남자 주변에 몰려들어 먹이를 찾던 비둘기들은 잠시 후 모두 떠나갔다. 그래도 한 마리를 쫓아내려다 비둘기 떼에 둘러싸여 잠시 당황하던 남자의 모습은, 왠지 통쾌했다.


*


떠나가는 비둘기들을 바라보던 내 시선은 그대로 머리 위의 나뭇잎과 그 사이사이의 하늘로 향했다. 그렇게 높고 먼 곳을 바라보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아, 좀 오래도록 바라보자 결심한다. 일을 하게 되면서 더 오랜 시간을, 박스 안과 진열대에 있는 물품과 계산하는 화면 같은, 너무 가까이에 있는 것들만 바라봤구나 싶다. 그런 쓸데없는 상념 중에 문득, 영화 <<패터슨>>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패터슨이라는 동네에 사는 시내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이,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 무슨 폭포 비슷한 것을 바라보면서 아내가 싸 준 점심 도시락을 먹는다. 그러면서 그는, 시를 쓴다. 그의 이름 패터슨은, 그가 좋아하는 오래전 그 동네에서 태어나 살던 시인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아무튼, 오늘의 나처럼 공원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도시락을 까먹던 패터슨은 시를 썼지만, 나는 아직 시를 쓰지 못한다. 그래도 독서 일지도 쓰고, 감정 일지도 쓰고 있으니, 언젠가는 나도 패터슨처럼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한가닥 희망을 품어보았다.


집(안 일)을 떠나니, 오후 근무를 끝내고도 이리 밤이 늦도록 앉아 이 생각 저 몽상을 떠돌며 글 몇 줄을 적을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니체는, 여자는 남자와 평등해지면 안 된다 했다. 또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스피노자는, 여자는 본성상 철학을 할 수 없다고도 했다. 어렸을 때의 나는, 내가 자란 세상에서는 여자와 남자가 정말로 평등한 세상이 오리라 믿었다. 나이가 좀 든 어느 날엔 문득, 남자와 여자가 평등할 수 있다면 (그렇게나 많은 세월 동안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살다 갔으므로) 진즉 평등 해졌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저, 다음 세상에서는 꼭 남자로 태어나, 여자와 남자가 평등해져야 한다는 피곤한 생각 같은 건 절대로 안 하면서, 나도 (편히 쉴 수 있는) 집에 가고 싶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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