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협 매장은 10시에 오픈하지만, 활동가들은 8시 반 이전부터 오픈 준비를 시작한다. 조합원님들이 아무도 오지 않는(못하는) 그 시간이 활동가들에게는 실상 가장 바쁜 시간이다. 모두들 팔이 여덟 개 달린 두르가 여신처럼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 물론 이제 수습 두 달이 꽉 찼지만, 여전히 팔이 두 개뿐인 나만 빼고!
두르가 여신들을 따라 해보려 서두르다, 그만 내가 밀던 대차가 책임자님이 열심히 진열해 놓은 살구박스를 스쳤다. 그 바람에 박스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고, 살구 몇 알이 바닥을 굴러갔다. 순간, 나는 놀라서 "어떻게!" 외마디 비명과 함께 얼음이 되었다. 그때 책임자-두르가 여신의 아주 차분하고 평온한 목소리가 들려와, 나의 얼음마법을 풀어주었다.
"내가 주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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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물품 계산은 단순노동이다. 그러나 아직 초짜인 내겐 아니다. 두르가 여신들은 빨리빨리 잘도 찍어대는 바코드가 내 손에만 오면 이상스레 말을 듣지 않는다. 또 할인 스티커가 붙어 수동으로 할인을 넣어줘야 하는 물품들이 있는데, 그 역시 빼먹어서 조합원님들의 지적을 몇 번 받기도 했다.
특히나 계산을 기다리는 조합원님들의 줄이 좀 길어진다 싶으면, 등에 땀이 나면서 바코드는 더욱 안 찍히고 할인 스티커는 더더욱 잘 뵈지 않는 것이다! 그런 식은땀이 흐르는 시간, 드디어 긴 줄의 맨 마지막 조합원님의 계산이 끝났다. 그런데 돌아가려던 그분이 매장 안에 붙여놓은 신규물품 포스터를 유심히 들여다보시다가, 그중 '민트 사탕'이 맛있냐고 내게 물으셨다.
마침 그날 매장에 처음 온 물품인지라, 아직 활동가들도 시식을 못한 상태였던지라 나는 '아직 못 먹어 봤는데, 박하사탕 맛일 것 같은데요'라고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러자 그분은 민트 사탕 한 통을 들고 다시 내게 와 계산을 하신 후에, 포장을 뜯어 사탕을 두 개 꺼내시더니 하나를 불쑥 내 쪽으로 내밀었다.
"이거 하나, 먹어봐요~"
사탕을 받으며 조합원님과 눈이 마주치자, 그분은 마치 비밀 친구에게 (우리 둘이서만 하나씩 먹자)하듯 내게 환한 미소를 보내시는 것이 아닌가. 계산 후 쉬는 시간에, 그 달콤하고 화~한 사탕을 까먹으며 서로 미소를 교환했던 조합원님의 이름 석자를 잊지 않으려고 주머니 속 수첩에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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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이 하루에도 서너 번 매장에 오시는 어떤 조합원님은, 오후가 되면 유치원 끝나는 손녀딸 손을 잡고 꼭 매장에 들르신다. 그분의 손녀딸은 정말이지 너무 귀여워서, 매장 활동가들이 모두 저절로 웃음을 짓게 되고 계속 넋을 잃고 아이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 아이는 더욱 신이 나서, 활동가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전부 다 찾아다니면서 인사를 하고 그러면 우리들은 그 아이가 더욱 귀엽고...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튼, 그 조합원님의 귀여운 손녀딸이 과자 하나와 우유 한 팩을 들고 와서 내게 계산을 해달라고 했다. 귀여워서, 내 얼굴에서도 그 아이를 향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가 모자를 계산대 위에 두고 간 것이다. 다행히 조합원님은 아직 매장 안에서 다른 활동가와 대화를 나누고 계셨고, 나는 그 귀여운 아이에게 모자를 돌려줄 수 있었다. 대화를 마친 그 조합원님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려 하자, 아이는 나를 돌아보며 이렇게 큰 소리로 말했다.
"사장님이 모자를 주셨어요~!"
귀여운 아이야~! 나 사장님 아니고 수습이야,라고 말은 못 하고 그냥 다 함께 웃기만 했다. 그런 뒤에 내 차례의 계산을 마칠 때 보니, 재사용 봉투 한 장의 계산이 비었있다. 응? 어떻게 된 거지....? 필름을 되돌려보니, 분명 귀여운 아이가 산 과자와 우유를 재사용 봉투에 넣어주었다. 그러나 귀여운 아이를 바라보느라, 봉투값 계산을 빼먹은 것이다. 귀여운 아이와 함께 온 그 조합원님께 전화를 드려 다음번 방문 때에 내가 빼먹은 봉투값을 계산해 주십사, 굽신굽신 당부를 드렸다. 사장님이 아니라 수습님인 내겐, 매우 귀여움도 치명적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