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 엄마의 수수께끼
예나 지금이나 엄마와 나는 아주 다르다. 눈으로만 읽고, 머리로만 생각하며, 소리가 없는 글자로 쓰는 걸 좋아하는 나와 달리, 엄마는 무엇을 보든 입으로 소리 내고, 무언가가 마음에 떠오름과 동시에 발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나는 이때껏, 엄마가 뭔가 쓰거나 기록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어릴 적부터 읽고 쓰는 걸 취미 삼았던 나는 매우 시끄러운(!) 엄마를 피해 다닐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엄마와 친해질 수도 없었다.
그런 채로 결혼을 했고 그로부터 20년 후 엄마와 다시 함께 살게 되자, 잊고 있던 우리의 다름이 새삼스레 나를 힘들게 했다. 그나마 어린 시절에는,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나를 보면 '공부하는가 보다'면서 내버려 두던 엄마였다. 그러나 이제 중년이 된 내가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있는 걸 본 엄마는, "지금 공부는 해서 뭐 하냐" 혹은 "글을 쓰면 돈이 되냐" 같은 말을 끊임없이 토해 내, 가뜩이나 메말라 가고 있는 나의 영감(inspiration)의 샘을 틀어막기 일쑤였다.
그래서 어느 날 밤에 나는 그만 용기를 잃고, '그래 이제와 글 쓰면 뭐 하겠냐, 나가서 알바나 하자' 결심하면서 눈물 한 방울과 함께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 밤 꿈속에 엄마가 나타나, 평소 현실과는 전혀 다른 말을 내게 하는 것이 아닌가!
"네 안에는 평생 써야 할 이야기가 있어!"
그 꿈을 꾼 뒤로 나는 결심을 바꿔, 다시 날마다 열심히 글을 써 나갔다. 그러면서 역시 나는 글을 쓸 때라야, 나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살 맛 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뭘 쓸까?' 고민할 새도 없이, 글은 언제나 나를 찾아온다. 고민이라면 여전히,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시끄러운 엄마와 함께인 집 안에서,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고요한 시간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며칠 전 엄마가 또 꿈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왜, 내가 주는 선물만 안 받니?"
잠에서 깨어난 나는, 꿈의 수수께끼 앞에서 고민에 빠졌다. '엄마가 주는 선물'이라니? 남들이, 자기를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에 대해 칭송하는 걸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훼방 놓기만 하는 엄마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던가. 그러나 언젠가부터 꿈의 말을 무시할 수 없게 된 나는, ‘꿈속' 엄마의 말을 다시 고요하게 묵상해 보았다.
삶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찾아내고 맛보게 하면서 힘든 삶을 견디게 해주는 글쓰기다. 그런데 나는, 근원적 고통의 원천인 엄마에 대해서만 쏙 빼놓고, 온갖 것에 대해 쓰고 있었던 게 아닐까? 쓰면 발견하게 되고, 발견하면 그게 무엇이든, 발견의 기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그동안 나는 아마도 '시끄러운 엄마'를 기쁨의 대상으로서는 아예 배제하고 살았던 것이 아닐까?
그런 결론에 이르자, 나는 꿈속 엄마는 물론이고 늘 곁에 있는 시끄러운 현실의 엄마가 줄 수 있을 가장 큰 선물을 받아보기로 했다. 게다가 실상, 내게 기쁨을 주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본성을 갖고 내가 태어나게 된 것도, 따지고보면 현실의 엄마가 준 선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