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읽기 2
예상대로, 냄새 없는 인간 그르누이는 자신에게 뿌릴 인간의 냄새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향수를 제조할 때와는 달리, 그는 아주 별난 성분들만을 찾아다닌다. 고양이의 똥, 식초, 식탁에 흘린 치즈 조각, 생선 통조림 뚜껑에 남은 비린내, 썩은 달걀과 타버린 돼지가죽 등등.
"그 자체로는 인간의 냄새라기보다는 오히려 시체의 냄새 같은 그 끔찍스러운 기본 재료들 위에 그르누이는 이제 기름 상태의 신성한 향기층을 만들었다... 악취는 위에 덮인 신선한 성분들로 인해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감추어졌다... 이상한 것은 썩는 냄새를 전혀 맡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생명의 향기가 그 향수에서 힘차게 퍼져 나오는 것 같았다."
신성한 향기로 뒤덮인 악취. 그런 냄새가 그를 매우 선량하고 좋은 사람으로 느끼게 만들어 준다는 상상력과 비유가 재밌다. 성스럽지만 속되고 선량하지만 비정하고 또 기쁨이지만 한없이 슬프기도 한, 그런 정반대의 것들이 등을 맞대고 있는 모순된 것이 삶의 냄새일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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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냄새 만들기에 성공한 그르누이는 이제, 냄새를 통해서 인간에게 다양한 감정과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 작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향기의 재료이고, 그중 가장 좋은 재료는 물론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며, 그런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는 소녀를 찾아내기도 했다.
그런데 모든 기술을 연마하고 가장 좋은 재료를 앞에 둔 그르누이는 잠시 고뇌에 빠진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르누이가 만들 최고의 향수 역시, 영원히 그의 향취로 남을 수 없을 것이다. 최고의 행복을 경험한 뒤 그것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헤어짐이 두려워 사랑에 빠지기를 주저하는 사람과도 같은 고민 끝에, 그는 (상실의) 두려움을 피하기보다는 향유의 기쁨을 만끽하기로 결심한다.
"동굴 속으로 도망쳐 숨는 일은 이미 경험해 본 일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것에 굴복하지 않았다. 성벽 너머 그 소녀의 놀라운 향기를 소유하는 것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 향기를 소유하는 일은 곧 그 향기의 상실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두 가지 다 그냥 포기하는 것보다는 소유한 <후> 그것을 상실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 더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언제나 포기만 해왔었다. 무엇인가를 소유했다가 상실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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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결심에 따라 이제 소설은 잔혹한 연쇄살인극이 된다. 스물네 명의 아름다운 소녀들이 희생되었으나, 범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선량한 인간의 향기를 마법의 외투처럼 입고 있는 그르누이는 전혀 살인자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몇 달째 더 이상 희생자가 생기지 않아, 사건은 종결된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범인이 다른 마을로 도주했고, 다른 마을에서 범인을 봤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 마을의 가장 아름다운 소녀, 가장 아름다운 향기의 재료가 될 소녀 로르가 아직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로르의 아버지 리시는, 범인은 도주했고 사건이 이제 끝났다고 믿지 않았다. 자신이 만약 연쇄살인범이라면, 가장 아름다운 자신의 딸을 가만둘 리 없다는 합리적인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딸을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그녀를 향기의 재료로만 여기는 그르누이의 마음속과 크게 다르지 않다.
"리시 자신에게 있어서도 로르는 모든 계획의 마지막 마감재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또한 그녀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의 최고의 야망을 실현하는 데 있어 없어선 안 될 존재를 그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우리가 지고하게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믿는 것도, 어쩌면 이런 아버지의 마음과 비슷한 점이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또한 필요한 것도 진실 아닐까? 내게 필요치 않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랑하는 그와 함께 실현할 수 있는 삶의 아름다운 모습을, 소유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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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르를 지키려는 리시의 철저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르누이는 가장 아름다운 재료로 고귀한 향수를 만들어내고야 만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그가 잔혹한 살해범이라는 증거가 세상에 드러났다. 그리하여 공개 처형의 날, 그는 자기가 만들어 낸 최고의 향수를 자신의 몸에 뿌린다.
그러자 처형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사람들은 그르누이가 살인자라는 걸 부정했고, 모든 절제심을 잃어버렸으며,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 터져 나오는 걸 느꼈다. 사람들의 정신과 영혼을 완전히 용해되어 순순한 액체상태로 만든 것은 바로, 그르누이가 최고의 재료로 만들어낸 고귀한 향수였다. 자신이 희생시킨 소녀의 아버지마저, 마치 아들과 같이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자신이 만들어 낸 이런 놀라운 향수의 힘을 지켜보던 그르누이는 다시 고뇌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이끌어 내는 힘이 있다. 아무도 그걸 거역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꼭 한 군데 있으니, 그곳이 바로 그르누이 자신이다. 그는 이 사랑의 향기를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는 이 향수를 통해 세상에 신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향수를 느낄 수가 없으니 그걸 바르고도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는 세상과 자신, 그리고 향수를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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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향기로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바로 그 사람만이, 그 고귀한 향기를 향유할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한데 실은 이런 일은 찾아보자면,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예컨대 카프카의 글을 카프카가 향유할 수 없고, 엄마가 만든 훌륭한 요리를 엄마 자신은 온전히 향유할 수 없지 않은가? 그건 어쩌면 천재 혹은 베푸는 자들의 운명이다.
그르누이는 한밤에 온갖 종류의 천민들, 도둑, 살인자, 무법자, 창녀, 탈영병, 불량배가 모여드는 묘지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의 향수를 한꺼번에 모두 흩뿌리고, 고귀하지만 너무 진한 향기에 홀려버린 천민들에 의해 서른 조각으로 찢어지고 먹힌다. 이제 다른 몸체들이 된 그르누이는, 이제 더 이상 그르누이 자신이 아닌 그는, 자신의 고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으며 또한 휘발되지 않는 영원한 자신의 향기를 얻게 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