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읽기 1
한 아기가 태어났다. 정말 특이하게도 시장 한복판의 생선좌판 뒤에서 태어난 아기는, 아기의 어미가 살아남기 위해서 태어나자마자 생선 찌꺼기들과 함께 버려졌다. 그러나 그 순간 아기는 기를 쓰고 '울어서' 아기를 살해하고 살고자 했던 어미를, 참수형으로 죽게 만들었다. 자신의 어미와의 한판 승부에서 이겨 살아남은 이 아기는 또한 특이하게도 냄새가 없었다.
냄새가 없어서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던 이 아기에게 아주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그건 바로 세계에 존재하는 온갖 사물의 냄새를 모두 식별하고 구별하며 그 하나하나를, 그것들이 아무리 혼돈스럽게 뒤섞여 있을지라도, 각각 분리해서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이런 마법의 후각을 지닌 특별한 아이 그르누이는, 그 후각적 능력을 통해서 밑바닥 세계에서 살아남는다. 그는 타인의 마음조차, 가장 동물적 감각인 냄새로써 알아챌 수 있었다.
잔혹한 무두장이 그리말 밑에서 짐승과도 같은 생활을 하며 노예처럼 일하던 그는, 결국 강인한 생명력을 통해 병을 이겨내고 신임을 얻게 된다. 자유 시간까지 얻어 낸 그는 자신의 특별한 후각을 향유하기 위해서, 파리 시내를 샅샅이 돌아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냄새에 이끌려 가게 되고, 거기에서 매혹적인 냄새의 근원인 어떤 (하층민) 소녀의 목을 조른다. 그의 냄새를 마음껏 맡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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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그르누이는 이제는 퇴락한, 향수 제조에 전혀 재능이 없었던, 향수 제조 장인 발디니의 공방으로 가죽 배달 심부름을 갔다. 그곳에서 풍기는 온갖 향기에 매료된 그는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 자신의 뛰어난 후각으로 퇴락한 장인이 해내지 못하는 인기 향수를 즉각 제조해 보인다. 발디니는 그르누이의 재능을 이용해 돈을 벌고, 그르누이는 장인을 이용해 '도제'라는 안정된 사회적 신분을 얻는다.
그르누이 덕분에 죽을 때까지 쓰고도 남을 돈을 벌고, 거기에 더해 600가지의 향수 제조법까지 얻어 낸 늙은 장인 발디니는 그르누이에게 자유를 허락한다. 물론 그르누이가 해낸 것들을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둔갑시켜 부와 명예를 얻었던 시간들의 불안함과 죄의식에서, 스스로도 자유롭게 해방되기 위해서였다.
그르누이는 냄새에만 집착했을 뿐, 부와 명예 따위에는 무심했다. 자유를 얻은 그르누이는, 인간의 악취를 피해 높은 산속 동굴로 숨어들었다. 그곳에서 그는 오로지 자기 영혼 하고만 지내며, 자기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꿈속에서 살아간다. 그렇게 7년을 보내던 어느 날, 그는 문득 공포스러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건 바로 그 자신에게 냄새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한 공포였다. 이 공포로부터 도망칠 방법이 없었다...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은 무서웠지만 자신이 냄새를 갖고 있는지 아닌지 확실하게 알아야만 했다... 그는 용기를 냈다.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두려움으로 사실을 알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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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소설을 잘 읽지 못하게 되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아주 흥미롭게 소설을 읽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세상의 모든 냄새를 식별하는, 냄새 없는 사람이다. 냄새를 통해서 세계를 인식하는 그에게,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것은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세계의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은 인식할 수 없는 사람. 그런데 어찌 보면, 우리 모두 그의 처지와 비슷하지 않을까?
스피노자를 읽고 있으니, 소설 속의 '냄새'가 자꾸 '관념'으로 자동 번역된다. 우리의 정신 속에는 우리가 마주치는 세계의 모든 사물에 관한 관념이 자동 생성된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한 관념은, 결코 자동적으로는 생성되지 않는다. 냄새가 없으나 동물적 후각을 지닌 그르누이는 다른 이들에게 혐오와 공포를 일으킨다. 타인에 대해서는 아주 예민한 신체변용과 관념을 생성하지만, 자기 자신 대해서는 무감한 이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냄새가 없는 그르누이는, 어떻게 자신의 냄새를 만들지 (혹은 찾을지) 아직 못 읽은 소설의 후반부가 매우 궁금하다. (스포는 사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