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목소리는 원래 크다
기억나는 때부터, 엄마 목소리는 언제나 우렁찼다. 사람들이 많고 소란한 넓은 곳에서 큰 목소리는 유용하다. 그러나 나랑 둘만 있는 조용한 때에도 엄마는, 내 귀 언저리쯤에서 필요 이상의 큰 소리를 내 가뜩이나 심약한 나를 놀라게 하기 일쑤(였)다.
심약한 딸 : "아, 깜짝이야. 왜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질러?"
우렁찬 엄마 : "원래 음성이 큰걸 어떡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고향 사람들은 다 그래, 비행장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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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의 본가는 서울 서쪽 끝자락에 있었다. 공항과 매우 가까운 그곳에 가면, 머리 위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이 너무 커다랗게 보여 기괴하고 소리도 어마어마하다. 자랄 땐 매일 수십 번이나 그 소리를 그저 '자연스럽게' 들었던 남편도, 이제는 그 소리가 놀랍고 신기하다고 한다.
그런 남편의 본가에서 바로 엄마 집으로 갔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와 함께 살기 전, 남편과 나는 시간 절약(?)을 위해 양쪽 집을 종종 한꺼번에 들렀다.) 그날도 역시 나는 엄마의 큰 목소리를 불평했는데, 그날따라 '비행장'이라는 말이 예사로이 들리지 않았다. 남편의 본가에서 실컷 부엌일을 하고 온 나는, 엄마 밥을 편히 얻어먹고 게으름을 부릴 수 있었기에, 엄마 고향에 대해 '비행장'과 '소음'을 키워드로 이런저런 검색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그 지역의 미군 공군기지의 소음 피해와 관련된 뉴스들이 제법 나오는 것이 아닌가. 2014년 그곳의 주민들은 국가를 상대로 전투기소음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냈다. 엄마가 일곱 살이던 1952년부터 60여 년이나 거대한 소음이 계속된 뒤에야, 드디어 사람들은 그 소리가 '폭력적'이라고 인식했던 것이다. 그 뉴스들 중에서, 이런 문장 하나가 유독 내 눈길을 끌었다.
"군용 항공기소음기준 설정에 관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항공기 소음은 청력 저하, 정신장애, 수면 방해, 아동행동발달장애, 심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엄마 고향의 '냇깔' 너머로 이사 왔던 미군들은 아이들에게 '전투식량'만이 아니라, 청력저하로 인한 큰 목소리까지 선물했던 것인가! 그런데다가 심혈관 질환이라니, 엄마의 평생 고질병인 고혈압도 정녕 미군의 선물이었단 말인가!
천둥 같은 목소리의 엄마는, 심약한 딸인 내 말소리를 '원래' 잘 알아듣지 못한다. 매번 힘들여야 엄마를 이해시킬 수 있던 나는 엄마를 탓하며, 항상 크게 소리를 치니까 작은 소리를 못 듣는 거 아니겠냐고 불평했다. 그런데 반대로, 고향 사람들은 비행장 때문에 다 그랬다는 엄마말마따나, 비행기 엔진 소음에 잘 안 들리니까 목소리가 저절로 커졌던 게 진실에 더 가까운 게 아니었을까.
또 내가 항상 무절제한 식생활 탓으로 여긴 엄마의 고혈압도, 혹시 이 세상의 소리가 잘 안 들려 답답한 마음에, 저절로 온몸의 혈압이 상승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니 또 무절제하게 먹고... 이건 마치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는지' 아니면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는지' 영영 알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였던 건 아니었을까.
*
내가 보청기를 권하면 엄마는 한사코 거절하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그 정도'가 대체 어느 정도인지 몰라도, 다 같이 마주 앉는 식사 때에도 엄마는 다른 가족의 말을 절반 밖에 못 (알아) 듣는다. 그건 다르게 말하면,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반밖에 전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다 못 듣는 사람이 더 아쉬울까? 아니면, 다 전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답답할까? 이런 변치 않을 아쉽고 답답한 생 앞에서, 나는 아름다운 동화 한 편을 상상한다.
'넓고 넓은 이 세상 어딘가에, 귀머거리 엄마와 벙어리 딸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이해할 순 없었지만 서로를 위해주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혹은 아쉽게, 혹은 답답하게, 어쨌거나 잘 살아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