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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mihr Oct 16. 2024

근사하긴 뭐가 근사해!

사랑의 단상 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


(원문, 강조표시는 롤랑 바르트)


il imagine 

que l'autre veut être aimé,

comme lui-même voudrait l'être,

non pour telle ou telle de ses qualités,

mais pour tout,

et ce tout ne pourrait s'inventorier

sans se diminuer :


dans Adorable!

aucune qualité ne vient se loger,

mais seulement le tout de l'affect.

Cependant,

en même temps qu'adorable dit tout,

il dit aussi ce qui manque au tout ;


il veut désigner ce lieu de l'autre

où vient s'accrocher spécialement mon désir,

mais ce lieu n'est pas désignable ;


...

Est adorable ce qui est adorable.



(해석)


(사랑에 빠진) 그는 상상한다.

그이도 사랑받기를 원할 것인데,

내가 그렇듯 이런저런 자질로서의 존재가 아닌

그저 통째로-전체적 존재로 사랑받기를

원할 것이라고 말이다.

전체란 (이런저런 자질들로) 분류된다면

어찌 되었든 축소될 수밖에 없기에.


"근사해!" 안에는

그 어떤 자질/성품 같은 것은 자리잡지 못한다.

그곳에는 오직 (내) 감정-정동의 통째-전체만이 있다.

그럼에도

'근사하다'는 (그이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하는 동시에

(그이의) 모든 것에는 없는 것까지도 말해준다.


‘근사하다’는 말은

(사랑받는) 대상 안의 어떤 장소를 가리키고 싶어 한다.

내 욕망을 특이한 방식으로 잡아채려는 바로 그곳을!

그러나 바로 그곳이야말로, 결코 가리켜질 수 없다.


...

근사한 그이니까, 근사한 것이다.



(단어와 문법)


* tel ou tel / telle ou telle 이러저러한

* tout/toute (나뉘지 않은) 하나 안의 전체  --- 우리 말로는 '통짜' 정도가 맞지 않을까 싶기도

   tous 여럿 모두가 전부 포함된 전체

affect 정서, 정동(情動)

   ---> 많은 철학자들이 '정동'이라고 번역하는 것 같다. 특히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감정이론을 재해석하면서 정동의 운동성을 강조한다. 자신의 능력이나 힘이 커지거나 작아지는 느낌, 그 '움직임과 이행에 대한 느낌'이 바로 살아서 꿈틀대는 정동이다.



(10줄 단상)


함께 사는 엄마는, 중국 드라마를 좋아하신다. 하루에 몇 분쯤은 그런 엄마 곁에서 나도 따라 몇 장면을 들여다본다. 그때마다 드라마의 배경은 언제나 신선과 도인들의 세계인지라, 세트-배경이 화려하고 의상과 헤어스타일도 낯설면서 신비적이다. 음, 이런 것 때문에 계속 보나? 그러나 엄마의 대답은 전혀 의외다.


"저기 나오는 주인공 남자애가 너무 잘생겼잖아!"


응? 아무리 들여다봐도 내 눈에는, 그 젊은 배우가 잘 생겨 보이지는 않는다. 


"뭐야, 저런 스타일이 좋아? 내 눈에는 우리 신랑이 훨씬 잘 생겼다, 뭐."

"그래?"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 신랑보다 더 잘 생긴 남자가 없으니까, 결혼했잖아."

"진짜야?"

"왜 그래, 엄마도 알면서. 그 이가 젊을 때는 이정재랑 똑같았잖아!"

"에이, 무슨 이정재야, 하나도 안 닮았구먼."

"무슨 소리야, 지금은 아재가 돼서 그렇지, 옛날에는 진짜 똑같았다니깐~~~ 흥!"


*


실은 지금도 내 눈엔, 다른 모든 중년의 남자들보다는 내 남편이 훨씬 더 잘생겨 보인다. 그에게서 나는, 다른 중년의 남자들에게선 볼 수 없는, 내 안에 각인(刻印)된 젊은 시절의 매력적인 모습을 함께 보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혹시 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그래서 다음 생에서 우리가 또다시 만난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보다 이 사람이 잘생겨 보이지 않겠는가. 엇! 만약 진짜 그렇다면, 그이를 만났을 때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잘 생겨 보였던 것도 어쩌면 안에 이미 그에 대한 기억이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그렇다면...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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