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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mihr Oct 10. 2024

'구멍 뚫린 도넛이었나?'

사랑의 단상 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


(원문)


L'Absence est la figure de la privation:

tout à la fois, je désire et j'ai besoin.

Le désir s'écrase sur le besoin:

c'est là le fait obsédant

du sentiment amoureux.

Le discours de l'Absence est un texte

à deux idéogrammes :

il y a les bras levés du Désir,

et il y a les bras tendus du Besoin.

J'oscille, je vacille entre

l'image phallique des bras levés et

l'image pouponnière des bras tendus.



(나의 번역)


부재는 결핍의 형상이다.

나는 욕망하면서 동시에 욕구(요구)하지만,

욕망은 언제나 욕구(요구)에 짓눌려 으스러진다.

그게 바로 사랑에 빠진 느낌에서 비롯되는

집착일 것이다.

(사랑에 빠진) 부재의 말들이란 아마도

욕망으로 치켜든 팔과 욕구(요구)에 닿아있는 팔

이런 두 개의 상형문자가 혼재된 텍스트가 아닐까.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치켜올린

팔루스적 이미지와

(욕구하는 것을) 붙잡으려 애쓰는

유아적 이미지 사이에서

나는 언제나 망설이고, 비틀거린다.



(단어/문형)


* c'est là 바로 이것이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 idéogramme 표의(表意) 문자

* osciller 망설이다 - vaciller 비틀거리다

   요건 한 세트로 외워보자, 망설이면 오씨예(오세요) 비틀대는 거 다 바씨예(봤어요) ㅎㅎ

* phallique 그 유명한, 남근(phallus)의 형용사형

* pouponnier(pouponnière) 유아적인, 보모 혹은 탁아소

* tendre A de B

   ‘tendre’는 (팽팽하게) 당기거나 (뭔가에 닿거나 혹은 닿을 걸 예상하면서) 내밀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다. 'de'가 함께 쓰인 예문을 찾아보니, 도배한다는 표현이 ‘tendre une pièce de papier’ 이렇다. 벽지를 든 손을 방의 사방으로 계속 뻗치고 있는 상태일 터, 그래서 원문의 마지막 구 ‘l'image pouponnière des bras tendus’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저것 좋아, 나 가질래 ‘ 떼쓰듯이 (금세 변해버릴) 욕구의 대상들을 향해 (두 손 가득 욕구를 담아) 긴장된 팔을 이리저리 내뻗어보는 모습이 아닐까, (못 그리는 그림을 그려가며) 상상해 보았다.




(10줄 단상 fragments)


누구나 가슴속에 구멍 하나가 있다. 크건 작건. 심리학자들은 결핍 혹은 원형(原型)이라고, 시인들이라면 '아름다운 나타샤'라거나 혹은 '별'이거나, 그런 이름을 붙여 주는 그런 구멍. 가려져 있을 땐 마치 다 채워져 있는 것 같지만, 바람이 많이 부는 어떤 날이면 그 구멍을 덮고 있던 낙엽과 지푸라기들이 흩어져버린다. 그러면 우리는 때 마침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 구멍을 만든 것 마냥 한탄한다.


롤랑 바르트는 그 구멍을 (아마도 라캉을 따라) 욕망(le désir)이라 부른다. 욕망은 깊은 구멍일 뿐, 그걸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처럼, 이것저것 욕구(요구)해본다. 그러면 어른(인 체하는 사람)들은 욕망에 욕구의 이름을 달아준다. 혹은 캐묻고 알아내려 한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그렇게 묻는 내게, (똑똑한)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대답한다. '나도 잘 모르겠다고...'


때때로 가슴속 구멍을 발견하거나 발을 헛딛어 추락한대도 그건,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쩌면 다시 나에게로 나오는 길인지... 누가 알겠는가. 그럴 땐 그저 함께 말없이 달달한 (구멍이 뻥 뚫린) 도넛이나 먹고, 동그란 달구경이나 하는 게 좋겠다.  



"어쩌다 저주에 걸렸을까요? 나쁜 짓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자네 혹시 6월 15일에 달을 올려다보지 않았나?"

"아뇨, 벌써 오 년쯤 달구경 같은 건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구멍 뚫린 음식을 먹지 않았나?"

"음... 도넛을 먹은 건 분명합니다."

"구멍 뚫린 도넛이었나?"

"네, 그야 도넛이라면 대게 구멍이 뚫려 있으니까요."

"그거구만"


           - 무라카미 하루키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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