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 229~232
기호체계들, 거기에는 많은 것들 아마도 모든 기호론들이 혼합되어 있다. 거기에는 다양한 내용의 형식들 뿐만 아니라 상이한 기호체제들이 서로 조합되어 있다. (전(前)-기표작용적 기호계, 반(反)-기표작용적 기호계, 기표작용적 체제, 후(後)-기표작용적 체제)
Des régimes de signes, il y en a donc beaucoup. Peut-être toute les sémiotiques (la sémiotique pré-signifiant, la sémiotique contre-signifiant, le régime signifiant, le régime post-signifiant)
"여름의 수렵기가 지난 후에도 비대칭적인 관계를 지속시키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또한 옳지 못하다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단지 기술력 때문에 우주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변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인디언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름 동안만 인간은 동물을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겨울에는 이 관계가 역전되어 이번에는 인간은 동물(자연)에 의해 잡아먹혀야 합니다.... 인간은 '식인'이 됨으로써 강력한 자연 권력을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일 수 있으며, 인간을 부정하는 존재에까지 이르고자 합니다." (나카자와 신이치)
보통 '원시적'이라 여기는 수렵사회의 '식인'풍습에 대하여, 들뢰즈-가타리는 그것이 전(前)-기표작용적인 의미로써 '이름을 먹는 것'이라 말한다. (대체로 기표작용적 체제를 따르는) 우리에겐 '먹기'의 반대는 '안 먹기'다. 예컨대, 비윤리적인 공장식 축산업의 '먹기'의 반대하기 위해서, 나는 고기를 '안' 먹기로 했다. 그런데 그러면 다시 어디까지 안 먹어야 하는가라는, 끝없는 의미 해석의 문제에 봉착한다.
그러나 윤리적으로 먹고 살기를 확실히 몸에 새기기 위해, 인간이 자신을(이름을) '먹어버리고' 자연적 존재가 되어 다른 인간을 '먹어버리면', 그걸로 더 이상 다른 의미해석은 필요가 없다. 따라서 그곳에는 사제나 희생양이 필요 없다.
그런데 모든 기호계, 기호체계는 혼재한다고 하니, 지금 내가 사는 세계에서도 이런 사회가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프랑스어 원문을 보면, 전-기표작용과 반-기표작용이 일어나는 시스템은 기호계(la sémiotique)로, 기표작용과 후-기표작용이 행해지는 것은 체계(le régime)로 표현되어 있다. 나를 둘러싼 것들 중 무엇이 (단순해서 깨지기 쉬운?) 기호계이고 무엇이 (견고하게 끝없이 연결되어 순환하는) 체계인가, 찬찬히 살펴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