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 225~228
희생양이란 결국 기표작용적 체제가 견뎌낼 수 없는 도주선을 육화(肉化)한 것이다. 즉, 이 도주선이란 그러한 체제가 차단해야만 하거나 단지 부정적 방식으로만 규정할 수 있는 절대적 탈영토화다. 왜냐하면 이러한 탈영토화는, 현 체제의 탈영토화 정도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그러한 탈영토화 강도마저 초과하기 때문이다.
Le bouc émissaire incarne enfin et surtout la ligne de fuite que le régime signifiant ne peut pas supporter, c'est-à-dire une déterritorialisation absolue que ce régime doit bloquer ou qu'il ne peut déterminer que de façon négative, justement parce qu'elle excède le degré de déterritorialisation, si fort qu'il soit déjà, du signe signifiant.
* Le bouc émissaire 속죄양, 대속자 * émissaire 배수로(排水路)
'희생양'은 기표작용적 체제에서만 존재한다. 기표작용적 체제는, 체제 그 자체의 보존을 위한 체제다. 그 안에서 아무리 다양한 해석을 해내도, 체제 자체가 흔들거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 블레이크가 관공서에 호소한 민원처럼, 지시의 화살표는 무한히 순환하면서 실상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다. 아무리 불합리해 보여도, 현 기표의 중심 - 법은 끄떡없다.
들뢰즈-가타리가 책 속에서 들어주는 예. "아내가 부정을 저질렀을 때, 아내의 얼굴을 베어버리는" 유목민 사냥꾼 크로우족에겐 희생양이 필요 없다. 그러나 같은 경우, "침착함을 잃지 않으면서, 가뭄과 기근이 마을을 덮칠 것을 기원"하는 제국주의적 정주민인 호피족은 다르다. 체제의 유지를 위해 자연과 우주를 탓하지만, 꾹꾹 억누른 남자들의 분노는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다시 그것이 체제를 위협할지 모른다. 그러니 때마침 선을 넘은, 가장 약한 아내 하나는 희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