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65

<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 277~280

by 미르mihr



지층들의 안전, 평온함, 생리적 항상성은 결코 완전히 보장되지는 않는다... 사실상 배치물은 두 개의 극 또는 벡터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영토성, 상대적 탈영토화, 그리고 재영토화들을 분배하는 지층들을 향해 있다. 또 다른 벡터는 고른-탈영토화의 판을 향해 있는데, 그곳에서는 탈영토화의 과정들이 변화-연결되면서 절대적 차원으로 옮겨간다.


La sécurité, la tranquillité, l'équilibre homéostatique des strates ne sont donc jamais complétement garantis : L'agencement en effet a comme deux pôles ou vecteurs, l'un tourné vers les strates où il distribue les territorialités, les déterritorialisations relatives et les reterritorialisations, un autre vecteur tourné ves le plan de consistance ou de déstratification, où il conjugue les processus de déterritorialisation et les porte à l'absolu de la terre.






이 문장을 읽다가. '모든 것엔 양가성이 있다'는 말을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어렵게 한 것이 아닌가 싶은 의문이 들었다. 흠, 철학자들이란 쉬운 걸 어렵게 말하는 사람들인가? 그러다가 몇 년 전, 인문학 공동체에서 어려운 책을 '신나게' 읽고 있는 내 옆에서, 지금 나의 의심과 비슷하게, 이런 말을 하며 화를 내시는 분이 떠올랐다.


"아니, 한 마디로 쉽게 말하면 될 걸, 뭔 이렇게나 어려운 말들로 이렇게 무겁고 두터운 책을 만들었담?"


그분의 말에 웃으면서 '내가' 이렇게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쉽게 말하면, 금방 잊어버리잖아요~!"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역시 맞는 말 아닌가! (그러나 그분은 그 말을 뒤로하고 곧바로 공동체를 떠나갔다...) 그 기억을 따라가니 언젠가, 어디선가, 또 이런 말을 들어본 적도 있는 것 같다.


"시인들이란, 자기 무릎에 상처가 나서 딱지가 나 아물만하면 떼어 내고, 그러다 또 딱지가 앉으면 떼어 내고, 그러고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 말이 정말 맞는 건지는 몰라도, 세상에 시인들이 있기에 우리의 상처는 그냥 '아프다'로 끝나버리지 않고, '돌'도 되고 '꽃'도 된다. 쉽게 말하는 게 어렵게 말하는 것보다 과연 더 좋은 일인가? 더 어렵게 말할 수 있는 데, 왜 쉽게만 말해야 하나? 그리하여 세상을 너무 단순하고 지루하지 만들지 말자! 게다가 내가 생각하는 그 쉬운 말이 정말, 저 어렵고-복잡한 말을 제대로 번역한 게 맞을까?


'돌'인 상처와 '꽃'인 상처는, 똑같은 상처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 "사실상 배치물은 두 개의 극 또는 벡터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와 "모든 것엔 가성이 있다"는, 미묘하게 서로 다를 것이다. 또, 어렵게 말한다고 '썽'이 날 때는, 그저 공부하기가 싫을 때 혹은 지금이 바로 내 마음의 여유가 없는 순간이라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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