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387~390
도주선에 관한 잘못된 인상들...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한 개인이 자신이 치러야 할 비용을 회피하는 방식이 아닐까? "책임"을 회피하고, 세상을 멀리하고, 사막이나 예술 속으로 피난하는 방식이 아닐까?... 하지만 도주선은 세상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그 자체가) 달아나게 만드는 데에 있다. 마치 관(管)을 파열시키듯이... 동물에게든 인간에게든 도주선보다 능동적인 것은 없다.
Quant à la ligne de fuite, ne serait-elle pas toute personnelle, manière dont un individu fuit pour son compte, fuit «ses responsabilités», fuit le monde, se réfugie dans le désert, ou bien dans l'art..., etc. Fausse impression... elle ne consistent jamais à fuir le monde, mais plutôt à le faire fuir, comme on crève un tuyau...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방 하나를 얻어 작업실이라 이름 붙여 본 적이 있다. 몇 년 전, 딱 1년 동안의 일이다. 자라면서 한 번도 내 방을 가져 본 적 없었는데,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은 뒤에도 역시 그랬다. 애써 만들려면 불가능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때까지는 나 만의 방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때는 갑자기 나만의 방이 절실했던 것이다.
가족들이 회사로 학교로 떠나면, 나는 나만의 작업실로 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곳에서 내가 뭐 거창한 진짜 작업을 한 것도 아니다. 책을 뒤적거리고, 글을 쓰겠다고 자판을 조금 두드리다가는 이내 이런저런 기억에 시달리고 그것은 엉뚱한 공상들로 이어지다가 정신이 혼미해지면 낮잠에 빠져들었다. 가끔씩은 그곳으로 친구들을 초대해서 함께 읽고, 먹고, 수다도 떨었다. 그렇게 1년 동안의 내 최초(이자 마지막이 아닐까?)의 작업실 생활은, 남는 것도 없이 월세만 낭비한 채로 끝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작업실로 도주했을 것이다. 그전까지 나는 항상 어딘가에 소속되려고 애썼다. 책 읽기도 글쓰기도 내가 소속된 혹은 나의 이상을 충족시키는 공동체 안에서, 어떤 목적 속에서,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더 이상 타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혹은 인정받고 싶지 않은) 무능력한 나를 발견한 것이다. 나는 '자기만의 방'에 숨어 들어서, 마음껏 몽상을 하고, 아무에게도 인정받을 필요가 없는 이런저런 쓸데없는 글을 끼적거리기 시작했다.
고작 그런 것들을 위해서 방까지 있어야만 했느냐고 묻는다면… 어떤 사람에겐, 어떤 시간에는, 그럴 수도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