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은 얼굴들처럼'
프리즈 서울 2년 차 개최를 앞두고 곳곳에서 미술 전시가 들썩거리던 2023년 8월. 비록 서울은 아니었지만 '이 전시만은 꼭 봐야지' 하고 결심했다 결국 놓쳐버리는 바람에 유난히 아쉬운 전시가 있다.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선보인 최욱경 개인전 <낯설은 얼굴들처럼(A Stranger to Strangers)>이다. 한국 1세대 여성 추상화가로 6-70년대 남성 중심이던 한국의 아방가르드 주류 움직임에 반해 개인적인 감정 표현에 몰두한 최욱경(1940~1985)의 작품 중에서 소형 흑백 종이 작품에 주목한 전시에 소개된 종이 작업 일부와 인체 드로잉 크로키를 포함한 총 21점이 2월, 서울을 찾았다. 국제갤러리에서 새롭게 단장해 공개한 한옥 건물 안에서 선보이는 첫 전시다.
K2와 K3 공간에 김홍석 작가의 개인전이 함께 오픈한 2월 1일, 입춘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제법 추운 날이었다. 불현듯 불어온 바람에 부르르 떨며 이끌리듯 유리문을 열고 들어선 한옥. 새단장한지 얼마 안 지나 반질반질하고도 어두운 색감을 머금은 서까래 아래 최욱경의 작품들이 꿈틀거린다. “I DON'T KNOW WHAT YOUR DOING, BUT I CAN'T HELP YOU BECAUSE I DON'T LIKE IT.(당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에 안 들기에 난 도와줄 수 없겠다)”라고 캔버스 한 켠에 쓰인 문구 옆 인물이 나지막이 말을 건네는 듯하다.
“대담한 필치와 강렬한 색채를 쌓아 올린” 작가에게는 매일 마주한 순간이 주요했다. 당대 여성 화가에게 흔치 않던 미국 유학 시절을 보내며 느낀 생경함, 개인 혹은 작가로 미국사회에 대한 솔직한 소회를 담고, 경험의 순간을 추상으로 표현하고 공유하며 자신만의 독창적 시각 문법을 구축했다. 작가는 문학에도 관심을 가지며 다층적으로 창작 활동을 펼쳐 나갔다. 1965년에 ‘작은 돌들’이라는 영문 시집을 제작했으며, 부산에서 개최된 전시 명인 <낯설은 얼굴들처럼>은 국문 시 45편을 수록해 1972년 출간한 시집의 명칭에서 따온 것이다. 시집에 삽화로 소개된 16점 중 <습작 (習作)>, <실험 (實驗)>, <I loved you once>, <Study I>, <Study II>, <experiment A>을 비롯한 6점의 작품이 부산에 이어 이번 전시에도 포함되었다.
"매 분分은 내게 순간으로서, 연원으로서 중요하다. 나는 어렸을 때 그러했듯 더 이상 세상을 기쁨의 방식으로만 보려 고집하지 않을뿐더러, 나중에 이를 특정 방식으로 보고자 준비하지도 않는다. 매 순간, 나로서, 정직하게, 내 마음의 문을 열고, 태양을 찾아, 나만의 방식으로 삶과 진실에 대한 사랑을 노래할 것이다." - 최욱경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앨리스의 고양이> 전시나 소마미술관 한국근현대미술전에서 선보인 바 있던 형형색색 추상의 날갯짓이 캔버스에 흩뿌려진 듯한 작가의 대작에 익숙했던 이에게 이번 소품 전시는 화가의 내면을 더욱 세밀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잉크, 연필, 차콜, 콩테, 판화 등 작가가 유학 시절 접한 다채로운 매체 속에서 포착한 추상 그리고 여기에서 묻어 나오는 자유로움을 가까이에서 느껴보자.
장소 국제갤러리 서울 한옥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48-14)
기간 2024.02.01 - 2024.03.03
엘르 코리아 닷컴 #요즘전시 칼럼(2024.02.15 게재) 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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