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미술 축제에 참여한 작가들의 국내 전시 소식
베니스 비엔날레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매 두 해마다 열리는 유서 깊은 국제 미술축제다. 1895년 처음 선보인 이래 도시 전역에 세계 각지의 미술가 작품을 두루 전시하며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주제를 탐구하고 미술계 트렌드 및 논의 형성에 주요 역할을 해왔다. 올해 역사상 처음으로 중남미 출신 큐레이터가 총감독을 맡은 제60회 비엔날레는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Stranieri Ovunque - Foreigners Everywhere)’라는 주제를 앞세웠다.
지난 3월 31일 막을 내린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에 참여한 이강승 작가, 아르헨티나를 기반으로 30여 년간 활동한 김윤신 조각가 외에도 이쾌대, 장우성 등 한국 출신 작가가 본전시에 이름을 올렸다. 4월 20일 공식 오픈한 2024 베니스 비엔날레와도 연관된 전시가 서울 곳곳 “어디에나” 있어 화제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가지 않고도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는 비엔날레 작가 전시 4선을 소개한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클레어 퐁텐(Claire Fontaine) 개인전: 아름다움은 레디메이드(Beauty is a Ready-made)
현재 이탈리아 팔레르모를 터전으로 둔 채 세계를 무대 삼아 활동하는 컬렉티브 클레어 퐁텐(Claire Fontaine)의 아시아 첫 전시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고 있다. 얼핏 여성의 이름인 듯하지만 영어로 맑은 샘(Clear Fountain)이란 뜻을 지닌 클레어 퐁텐은 한국의 모닝글로리, 모나미에 견줄만한 프랑스 대표 문구 브랜드 상표명을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차용은 아버지 이름을 물려받거나 작품에 작가의 이름을 붙이는 관습에 대한 반기이자, 레디메이드 차용으로 미술사에 새로운 장을 연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s)의 작품 샘(Fountain)(1917)에 대한 경의의 표시다.
이번 전시에서 시리즈 중 네 점이 출품된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2004-)는 2004년 클레어퐁텐 결성 시점부터 지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는 대표작으로, 전 세계 332명의 작가가 참여한 베니스 비엔날레의 본 전시 주제로도 채택되었다. 2000년대 초반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에 맞서 싸운 토리노 콜렉티브 전단지에서 가져온 문구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날, 여러 범주의 소수자, 국경 분쟁으로 발생한 난민, 이민자, 실향민의 숫자가 기록을 경신한 지구촌 모두에게 우리 자신이 바로 이방인이자 외국인이며 타자임을 인식하기를 촉구하는 강력한 메시지로 작동한다. ‘예술은 정치적 난민들의 장소가 된다(Art has become a place for political refugee)’고 믿는 클레어 퐁텐의 작품세계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 정치적 무력감에 잠식된 현대인에게 현재 상황을 되돌아보도록 환기한다.
장소 아뜰리에 에르메스(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45길 7 지하 1층)
기간 2024.3.22 - 2024.06.09
국제갤러리 김윤신 개인전
김윤신(1935년생) 작가만큼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는 이번 비엔날레 주제와 부합하는 미술가가 또 있을까. 스스로를 동서남북 작가라 일컫는 구순을 목전에 둔 조각가는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해방과 전쟁이라는 대격변을 겪으며 역설적으로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잊었다. 이남 후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뒤 서른을 앞두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조각, 석판화를 배웠다. 1984년 우연히 찾은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40여 년간 이곳에 터전을 잡고 때로는 멕시코에서, 때로는 브라질에서 머물며 새로운 재료를 찾아 작업을 이어가다 구순을 목전에 두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로서 1973년 제12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했던 김윤신이 라틴 아메리카 출신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가 기획한 본전시에 참여한 것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영원한 현역이자 영원한 이방인을 자처하는 작가의 작업이 변화해 온 변곡점들을 짚어내는 이번 개인전은 현재진행형인 아흔의 거장이 걸어갈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한다. 서울 전시는 4월 28일 종료를 앞두고 있으니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
장소 국제갤러리(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54)
기간 2024.3.19 - 2024.04.28
마시모데카를로 서울 스튜디오 마시모 바를톨리니 개인전
최근 리움에서 많은 관람객을 동원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에서 작가가 은색 테이프로 새하얀 벽에 매달았던 주인공을 기억하는가. <완벽한 하루>라는 작품에서 처절한 표정연기가 일품이던 이 인물은 다름 아닌 마시모데카를로 갤러리를 이끌어온 주역이다. 1987년 설립 이래 이탈리아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등을 소개하며 대담하고 파격적인 목소리를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차별화를 꾀해온 내실 있는 화랑의 주인은 그야말로 제 몸 살라 현대미술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혁신적인 전시와 예술적 진정성, 확고한 헌신을 통해, 전 세계 작가 및 미술 애호가에게 영감을 주며 예술계에서의 지평을 넓혀 온 갤러리는 밀라노 외에도 런던, 홍콩 베이징, 파리에 거점을 두며 국제무대에서의 입지를 다져 왔다.
지난 3월 서울에 스튜디오 뷰잉룸을 열며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알렸다. 개관전을 잇는 두 번째 전시는 2024 베니스 비엔날레 아르세날레 이탈리아 국가관을 대표해 거대 설치작업 <<Due qui / To Hear>>프로젝트를 공개한 마시모 바를톨리니 개인전이다. 모노크롬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돋보이는 <이슬(Dew)> 연작은 마치 반려식물처럼 스프레이로 주기적으로 이슬을 맺히도록 해주어야 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각도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작업을 두고 작가는 “이 작품들은 변화하는 작품이고, 변화가 있으면 그곳에는 시간이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정체된 상태에 개입해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 작품의 시간 앞에서 삶의 시간을 가늠해 보게 된다. 서울 스튜디오는 사전 예약 후 방문 가능하다.
장소 마시모데카를로 서울 스튜디오(서울 강남구 선릉로161길 31 혜성빌딩 5층)
기간 2024.03.19 - 2024.05.04 (사전 예약제)
스페이스K 에디 마티네즈 개인전: To be Continued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태어나 현재 미국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에디 마티네즈는 매일 같이 스케치를 멈추지 않는다. 거장의 작품부터 대중문화, 일상 등 관심을 가지는 모든 것을 소재 삼아 항상 펜과 종이를 들고 다니면서 드로잉에 이미지를 겹치거나 변형을 주어 채색을 일삼는다. 일상적인 사물에 관심을 가지고, 주변에 일어나는 시각 경험을 담아내기 위해 속도감이 절로 느껴지는 선과 대담한 색상이 돋보이는 작품은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이탈리아 내륙국으로 매해 타국 작가 전시를 선보여온 산마리노 공화국 전시관 대표작가로 에디 마티네즈가 선정되었다. 늘 진행 중인 작가의 작품세계를 표방한 듯한 <투 비 컨티뉴드> 전시명을 내걸고 스페이스K 서울에서 작가의 개인전이 진행 중인 만큼, 그의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 소식이 더욱 반갑다. 이번 서울 개인전에서는 2005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구상과 추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에디 마티네즈의 회화, 그리고 작품 세계의 근간이 되는 드로잉 30여 점을 한데 모아 보여준다. 베니스에 비하면 마곡은 지척이다. 필히 놓치지 말자.
장소 스페이스K 서울(서울 강서구 마곡중앙8로 32)
기간 2024.03.14 - 2024.06.16
엘르 코리아 닷컴 #요즘전시 칼럼(2024.04.22 게재) 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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