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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은 왜 태양을 그렸을까

by 흐르는물

동해 바다에 떠오르는 태양을 본 적 있는가. 태백산 정상에서 흐르는 운무를 뚫고 솟아오르는 태양을 본 적 있는가. 그 경이로운 순간은 태초의 신비처럼 웅장하고 숭고한 시간으로 머문다. 그런 태양을 그린 화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다. 태양은 생명과 빛, 희망, 사랑 그리고 권력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해 왔다. 누구나 그 밝음 속에서는 따뜻함과 위안을 느끼며,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태양의 빛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존재를 지탱하는 힘이자 생명의 원천이다. 빛이 비치는 순간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풀리고, 시든 생명은 다시 기운을 얻는다. 에너지다.


그렇기에 인간은 어려움과 두려움 속에서 구원의 손길을 상징할 때 ‘빛’을 그린다. 그 한 줄기 빛은 고난과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는 믿음의 표현이며, 동시에 권력과 질서를 상징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수많은 그림 속 태양은 보호와 권위, 그리고 인간의 나약함을 감싸는 구원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자연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인간은 의존과 경외심을 가지게 되고, 그 안에서 다시 삶의 의지를 다잡는다. 그런 태양을 그린 작가들이 있다. 바로 모네와 고흐, 뭉크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인상, 해돋이(1872)〉는 태양을 화면 중앙에 담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청록색의 바다와 붉은 태양이 만들어내는 색의 대비 속에서 빛의 떨림이 인상적으로 드러난다. 잔잔한 수면 위에 떠 있는 작은 배는 생명의 존재감을 미묘하게 드러내며 화면의 조화를 이루어 새벽 바다로 나서는 어부의 삶과 희망을 암시한다. 혹은 일몰의 순간으로 읽히기도 하며, 하루의 끝에서 평온한 귀향을 기다리는 인간의 마음을 보여준다. 모네의 태양은 생업과 희망, 하루의 순환을 상징하는 ‘삶의 빛’이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해바라기 연작, 1888〉은 태양을 직접 그리기보다, 해바라기를 통해 그 빛과 생명력을 형상화하여 표현했다. 친구 고갱을 맞이하기 위해 그린 이 작품에는 해바라기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두터운 붓 터치와 단일 색조를 통해 더욱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향한 생명의 몸짓이며, 고흐 자신에게는 스스로를 지탱하는 희망의 상징이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보다 더 환하고 따뜻한 그림은 없을 것”이라 적었을 만큼 그의 마음속에 가득 찬 희망의 빛이 화면 위에 그대로 드러난다. 고흐의 태양은 자기 내면의 치유와 열망, 다시 살아가려는 의지의 빛이었다.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의 〈태양, 1911, 오슬로 대학 강당 벽화〉은 거대한 태양이 화면을 가득 채운채 사방으로 빛을 뿜어내는 장대한 벽화 작품이다. 그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산맥을 뚫고 뻗어 나가는 오색찬란한 빛의 기운은 세상을 덮을 듯 강열하다. 과거 〈절규〉에서 느껴지던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생명의 근원적 에너지가 폭발하듯 표현되었다. 뭉크의 태양은 자신의 고통을 벗어나 성숙한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며 위대한 자연의 찬미다. 즉, 이 순간 자연은 그에게 있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을 품는 원초적 근원의 힘이 된다.


한편, 조선 왕실 회화의 대표적인 그림인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에는 태양과 달을 양쪽에 나란히 배치하고 다섯 개의 봉우리와 물결, 소나무 등을 통해 영구한 생명력을 표현하며 왕의 권위와 우주의 조화를 상징했다. 자연이 지닌 큰 힘이 곧 인간의 힘인 것 처럼보이도록 함으로써 권위와 장생을 이상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결국 태양은 시대와 지역을 넘어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얻는 위안과 경외심의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태양은 인간이 끝없이 추구하는 희망과 열정, 그리고 생명과 에너지를 담은 빛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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