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 May 02. 2023

마음 속 슬픔의 벽장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너무 힘든 일이나 속상한 일은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았다. 이유는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줄 것 같아서,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해서 그리고 부모님이 속상하실까봐 등등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내 인생 최대 슬픔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되었다. 반에서 선생님의 사랑을 줄곧 받던 나를 질투하던 한 친구가 모든 여자친구들을 자기 편으로 끌고 가 나를 따돌렸다. 내가 단짝으로 여기고 편지를 주었던 친구마저도 그 친구의 입김에 넘어갔다. 내가 그 친구에게 주었던 편지는 화장실 쓰레기통에 찢겨져 버려져 있었다. 그 장면을 본 나는 얼마나 큰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친구에게 따져 묻지 않았다. 


  나는 줄곧 외롭게 지냈으나 이에 대해 담임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씩씩하고 꿋꿋하게 학교 생활을 하고 상을 받으며 졸업을 했다. 그렇지만, 5학년 때까지 줄곧 행복했던 나의 학창시절과 발랄함은 중학교에 가면서 위축되었고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어려워했고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려웠다. 중학교 1학년 때도 여전히 나에게 다가오는 친구들을 반갑게 맞이하지 못했고 어딘가 모를 불신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좋은 친구들이 반에 많이 생겼고 그 중 한 명이 나의 단짝이 되었다. 나는 다른 친구들과도 두루두루 지내고 싶었으나 그 친구는 내가 자기에게 집중해주기 원했다. 결국 그 친구는 나에게 깊이 서운해하며 3학년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져갔다. 다행히 3학년 때는 좋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초등학교에서의 충격적인 사건과 중학교 때도 이어진 몇 개의 사건들로 나는 선생님의 관심을 최대한 받지 않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답을 알아도 절대 손을 들거나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면 선생님들이 나를 예뻐할 것이고 그러면 친구들이 나를 질투하게 될 것이고 나는 그걸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이 선생님의 사랑을 받는 것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때도 교수님과 개인적인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매우 노력했다. 기이한 노력이다. 다행히 대학원 과정을 통해 학창시절의 이 모든 아픔은 극복되었다. 원우들과 좋은 관계로 즐겁게 공부했고 교수님들의 예쁨과 칭찬을 받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재작년 처음 사귀었던 연인과의 헤어짐은 나에게 말할 수 없이 큰 슬픔을 가져다주었다. 여전히 가끔씩 그 기억을 떠올리면 이미 형성된 슬픔의 방에서 눈물을 쏟아낸다. 정말 헤어지기 위해, 잊기 위해, 오랜 기간 많이 울고 또 울었는데도 이 눈물은 잘 멈추질 않는다. 나는 내가 너무 소중하다며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결혼하자고 했던 그의 말을 너무 믿었다. 오랫동안 그를 그리워했다. 그는 떠났지만 나는 마음 속 나만의 세계에서 계속해서 그를 붙들었고 그와 함께하는 상상을 하며 마음을 달랬다. 그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그가 잠시 파기했던 그 약속을 지켜줄거라고 믿고 기다렸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끝났고 그의 모든 약속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는 내 안에서 죽었다. 그는 없다. 


  오늘 동생을 통해 소개를 받아보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감사하고 설레야 하는 일인데 두려운 마음부터 들었다. 괜찮을까? 결혼이 너무 하고 싶지만, 이성적으로는 결혼이 너무 두렵다. 부모님이 결혼생활을 유지하시는 과정에서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계속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분홍빛 달콤하기만 하면 좋았을 연애 기간에도 나는 계속 두려웠다. 정말 결혼해도 괜찮을까? 잘 살 수 있을까? 내가 너무 괴롭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하루 종일 많은 고민과 스트레스를 받았다. 주변에 이미 결혼한 지인들은 결혼하면 여자가 너무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행복하다는 이야기보다 힘들다는 이야기를 훨씬 더 많이 듣는다. 내가 잘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예민한 편인데..  결론적으로는 그래도 일단 알겠다고 했다. 

 

  개인 상담을 12회 정도 꾸준히 받다가 6개월에 한 번씩 받고 작년 여름 이후, 올해까지 한번도 상담을 받지 않았지만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오늘 또 슬픔의 벽장이 열리니 고민이 된다. 열심히 살다가 한 번씩 슬픈 감정이 올라오면 감당하기가 힘들다. 나의 핵심감정 중 하나는 내가 버려질까봐 두려워하는 감정인 것 같다. 18개월 때, 엄마가 둘째 남동생을 낳으러 병원에 가셨다.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집에 있었는데 엄마와 오래 떨어져 있던 것이 처음이었는지 벽에 머리를 박으면서 "엄마"를 부르며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다. 아주 어렸을 때여서 기억이 나지 않아야 정상인데, "OO아, 엄마 동생 낳으려 갔어."라고 하셨던 할머니 말씀도 기억이 난다. 너무 어려서 할머니 말씀이 나에게 전혀 납득도 이해도 되지 않았다. 그저 나는 엄마에게 버림 받은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와 헤어지는 일이 너무도 힘들고 잘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학창시절과 성인이 되어서도 내게 소중했던 존재가 나를 거절하고 버리고 떠나간 일들은 여전히 나에게 슬픔을 가져온다. 그렇지만, 이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거늘.. 나는 이 슬픔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꺼이.. 

작가의 이전글 꽉 차게 하루를 살아도 누릴 수 있는 여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