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거야 Mar 15. 2023

허물어지는 세계

허물어지는 세계

 내가 유년시절을 보내던 1980년대 후반에는 상하수도의 설비가 일반화되지 않은 집들이 있던 시절이었다. 내가 살던 다세대주택 또한 그런 곳에 해당되었고 집마다 생활하수가 그대로 흘러나와 담벼락 밑으로 파놓은 도랑으로 모였다. 그 도랑에는 가늘고 기다란 실지렁이가 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물속 땅에 뿌리내리고 제 몸을 그 위로 퍼뜨리며 아우성치는 모습을 살펴보고는 했다. 그것은 지칠 줄도 모르고 여러 갈래로 뻗어 나와 몸을 쉴 새 없이 흔들어댔다. 내가 지켜보는 동안 어느 집에서 물을 흘러 보내 도랑에 물이 더해지면 더 활발하게 움직였는데 나는 그런 모습을 끔찍이 징그러워하면서도 자꾸 보았다. 더 자세히 관찰했고 그것이 주는 혐오감을 느끼면서 그러나 그것이 거기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두 눈으로 재차 확인했다. 그것은 나에게 어떤 감정을 줄 수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은 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나를 만질 수 없었고 눈이 없어서 나를 볼 수 없었다.

  내가 오래도록 실지렁이 보면서 관찰한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두려움의 경계에 관한 것이었다. 무엇이 나에게 두려움을 주느냐와 실제로 나를 헤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두려움을 주는 그것이 나를 훼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은 언제나 높지 않았다. 그것에 대한 확인은 나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고 거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경계는 확장된다. 나는 마침내 엄마의 손에 이끌려 유치원에 가게 되었다. 유치원에 가게 된 것이 두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유치원에 엄마 없이 혼자 남게 된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비슷한 처지의 또래 아이들이 모여 있었으므로 견딜 수 있었고 나는 확장된 삶의 경계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에게는 공식적인 단짝이 생겼다. 이름은 윤희였고 나보다 한 살 어렸는데 우리는 곧잘 어울려 놀았다. 윤희의 집은 유치원 가는 길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윤희의 집 앞에서 윤희를 만나 함께 등원할 수 있었다. 나의 엄마와 윤희의 엄마는 둘을 짝지어줌으로 유치원까지 아이들을 데려다줘야 하는 일을 하나 덜어서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 매일 다니다 보니 우리는 동네에서 인정받는 단짝이 되었다. 둘이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어른들은 재미로 나에게 윤희의 안부를 물어 오기도 했다. 혼자서 걸어가면 “윤희는 어디 갔대?”하고 묻고서는 내가 대답을 할 틈도 주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키득키득 웃거나 내가 무슨 대답을 하건 안중에도 없어했다. 아무튼 나는 윤희가 내 단짝이라는 것에 안정감을 느꼈고 윤희를 좋아했으므로 유치원에서 당연히 윤희가 나하고만 놀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와 윤희를 중심으로 관계가 정립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 생각에는 그랬다. 어른들이 자꾸 서로의 행방을 물어오는 정도의 사이라면 나도 윤희를 책임지고 윤희도 나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윤희가 나하고만 놀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윤희는 다른 아이들을 친구로 사귀고 있었다. 윤희는 얼굴이 하얗고 예쁜 옷을 입고 시내에서 통학하는 어떤 아이를 특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 윤희는 그 밖의 친구들과도 두루 잘 어울렸다. 점점 윤희와 멀어지면서 나는 윤희가 미워졌다. 동시에 윤희의 돌아서버린 마음을 다시 얻고 싶었다.


 어느 날 유치원 후문으로 하원하면서 나는 쓰레기 소각장에서 놀고 있는 세 명의 여자아이들을 보았다. 마치 첫째, 둘째, 셋째인 것처럼 그들의 연령에 다소 차이가 있었고 나보다 몇 살 많거나 몇 살 어려 보이거나 했다. 그 애들은 헝클어진 머리에 지저분한 옷을 입고 있었다. 무엇보다 태우다 만 쓰레기의 잔해와 빙빙 맴도는 날벌레들이 있는 그런 곳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그들이 나는 이상해 보였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라면 절대로 저런 곳에서 내가 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몇 번 이상 보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저 아이들은 돌보아주는 어른이 없는 것이라고. 나는 윤희에게 이런 내 생각을 털어놓았다. “저 애들은 엄마가 없나 봐.” 나는 윤희의 귀에 속삭였다. 사실 나에게 그 애들에 관한 진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윤희와 속삭이고 싶었고 둘 만의 유대감을 만들고 싶었다. 윤희는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들과 이런저런 말들을 속삭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하고도 속삭이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배신이 일어났다. 다른 날들과 비슷한 날이었고 윤희와 나는 유치원을 파하고 막 후문을 지나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갑자기 세 자매가 빠르고 무섭게 나를 에워쌌다. 윤희는 저만치 물러나더니 서둘러 집에 가버렸다. 자매 중 가장 언니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내게 따져 물었다. “네가 우리가 엄마 없는 아이들이라고 했다며?” 나는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애들은 쩔쩔매는 내 모습에 자신감을 얻어 나를 더욱 궁지로 몰았다. 나는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믿어지지 않았다. 친구의 배신과 이런 에워쌈은 처음 당해보는 일이었다. 마치 데미안이 프란츠 때문에 자기 세계가 깨졌던 것처럼 이전의 안온한 나의 세계는 금이 가고 그 틈새로 두려움의 세계가 들이닥치고 있었다. 그 두려움은 경계를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애들은 거의 날마다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에워싸고 내가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꼴을 보고 만족하고 나서야 집에 가도록 허락해 주었다.

 나는 용기를 내야 했다.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애들에게 마음을 얻어야 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는 못했다. 나는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셋이었고 무엇인가를 주어야 한다면 세 명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야 했다. 그때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 얼음이었다. 마침 며칠 전에 부모님은 드디어 냉장고를 장만한 것이다. 냉장고가 없는 집이 아주 많지 않기도 했고 내 경우에는 냉동실에서 나온 얼음을 먹는 것이 즐거운 경험이었다. 내가 우리 집에 얼음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을 때 다행히 그들은 솔깃해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 세 명 모두를 데리고 집까지 왔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조금 예민해져 있었다. 윤희는 집에 돌아왔는데 내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이 어디에서 노느라 정신이 팔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했다. 화가 난 엄마에게 내가 겪고 있는 곤란을 설명하기란 무척 어려워 보였다. 게다가 그 애들의 마음을 풀어 주려고 여기까지 데리고 왔는데 엄마가 그 애들을 쫓아내거나 혼내버리면 나중에는 더 큰 화가 있을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그 애들을 대문 앞에 세워 놓고 엄마에게 애원하다시피 얼음을 가져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상황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얼음을 가지고 가도록 허락해 주었다. 나는 그릇에 얼음을 담아 가지고 세 자매에게 주었다 그들은 매우 소심한 자세로 얼음을 하나씩 입에 물고 눈치를 보다가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러고 나서 그 애들은 더 이상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마침내 두려움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나의 세계, 나의 밝은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세계는 결코 전과 같지는 않았다.


 나는 궁금했다. 어째서 윤희는 내게 그런 짓을 한 것일까. 그리고 그 애들은 왜 나를 그렇게나 괴롭힌 것일까. 세상일은 내 맘 같지 않았고 언제라도 예상밖의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다. 친구 사이라는 것은 언제라도 변할 수 있었다. 이전의 나의 세계는 허물어지고 나는 확장된 세상 밖으로 한 걸음씩 떠밀리고 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