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영일 Jun 08. 2024

남한산성

남한산 산행기

성남 시내를 가로질러 남한산성으로 향한다. 오래전엔 남한산성에 자주 올라오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 이후엔 이곳에 올 기회가 거의 없었다.

도시는 예전에 비해 도로가 넓어졌고, 단독주택 대신 고층아파트 많이 들어선 모습으로 발전했다.

산성역 지나 남한산성으로 가는 언덕길로 접어드니,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행렬이 길게 이어진다. 도심과 달리 이 길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주말에는 차량들로 난리가 나겠구나!" 하는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도 큰 막힘없이 잘 빠진다.


목적지 주차장에 도착하고 빈자리 찾아 차를 세우니, 주차장 귀퉁이에 등산 안내판이 눈에 띈다.

안내판을 살피고, 남한산성 역사테마길 3코스를 따라 걷겠다고 마음먹는다. 아직 한 번도 가 본 적 없지만 남한산 정상을 봐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왔던 터라 설임 없이 코스를 정한다.


남한산성에 "남한산"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남한산성 갔다 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남한산 간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들어 본 적 없다.


산행은 남한산성 보건소 입구 쪽으로 시작된다.

보건소 앞을 지나조금 더 오르니 등산 안내판에서 봤던 현절사(顯節祠)가 보인다.

절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너무 작은 것 같은데, 대문 안쪽으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분과 내부를 둘러보는 듯한 등산객이 언듯 보인다.


그냥 지나치려 생각했지만, 대문 안쪽으로 보인 모습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여 대문 안으로 발길을 들인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반백의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시며 현절사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신다.

이곳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화의를 끝까지 반대하다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가 죽음을 당한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와 척화파의 수장이었던 김상헌 그리고 정온의 위(位牌)를 모신 사당이라는 말씀을 이어가신다.  

현절사

왼쪽 첫 번째 자리에 위가 모셔진 김상헌에 대해서는 내가 알고 있던 얄팍한 상식을 해설사 선생님께 설명해 드릴 수 있었다.

선생이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후 낙향하여 은거했던 "청원루"가 고향집 근처에 있어, 자연스럽게 선생의 일대기에 관심이 있었덕분이었다. "청나라를 멀리한다"는 뜻으로 집을 청원루(淸遠樓)불렀.


1636년 추운 겨울에 청나라가 조선을 공격하자 인조는 대신들과 함께 이곳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다. 강화도로 몽진할 계획이었지만 청나라 기마병들이 이미 길목을 막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이곳으로 몸을 피한 것이었다.


남한산성을 거점으로 항전을 펼칠 계획이었지만, 미리 대비하지 못했던 탓에 고립된 산성 안에서 굶주림과 추위 때문에 버티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그리고 청황제 홍타이지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조선으로 내려오자 조정은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죽음을 각오하고 끝까지 항전해야 한다는 척화론자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강화도 마저 함락되자 이미 전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인조는 47일 만에 산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의식을 치르게 된다.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 조선이 오랑캐 나라로 여기던 청나라와의 전쟁에 패하고 임금이 직접 나서 머리를 조아린 것은 참을 수 없는 치욕적인 일이었다.


사당을 나와 다시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이라 해봐야 얼마 안 가서 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남한산 정상석까지 가보자는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진다.


조금 더 오르니 성벽이 보이기 시작하고, 성 외부로 드나드는 암문이 나타난다. 암문을 나가니 산 아래로 서울 도심이 보이고 또 다른 성문이 나타난다. 성 안팎이 헷갈리는 한 구조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그늘 없성벽길이 이어지고, 얕은 언덕길 올라 서니 "남한산"이라 적힌 정상석이 나타난다.

봉우리가 아닌 평평한 곳에 표지석을 세운 게 특이하긴 하지만 매끈하고 참하게 생긴 바윗돌이다.

바윗돌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었지만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진짜 이곳이 정상인가 하는 의심이 드는 지형 때문이다.


저 앞으로 보이는 언덕이 높아 보이는 탓에 그쪽을 향해 나도 모르게 발길이 옮겨진다. 밋밋한 언덕 끝자락에 올라서니, 능선 따라 길게 이어진 성벽과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뭉게구름이 보인다. 이곳이 남한산의 진짜 정상이다.  


하늘과 땅 모두가 평화로워 보이지만, 약 400년 전 청나라 군대에 포위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척화파와 주화파가 말싸움만 하고 있던 그날의 역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병자호란이 왜 일어났으며, 청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조선의 대응은 어떠했는지 역사적 관점에서 다시 한번 상기해 볼 가치가 있다.

군사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아버지의 나라로 섬기던 명(明)과 떠오르는 군사강국 청(淸) 사이에서 보인 조선의 외교적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을 부분도 있을 것이다.

병자호란 이후 긴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가 놓인 지리적 위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6.25 이후 약 70여 년간 한반도에 전쟁이 없었다. 우리 민족 반만년 역사에서 이렇게 오랜 기간 전쟁이 없었던 적 없었다고 한다. 평화로운 세상을 살다 보니 자주국방(自主國防)의 중요한 가치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평화도 스스로 힘이 있을 때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봉암성
남한산 정상
성벽


작가의 이전글 불암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