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영일 Aug 03. 2023

신라의 달밤

경주 남산 산행기

덜커덩 덜커덩 완행열차 타고 수학여행 가던 희미한 기억이 있는 곳. 그곳은 신라 천년의 수도 경주다.


날은 태어나서 가장 멀리 가는 여행이었고, 바다를 처음 본 날이기도 했. 불국사와 다보탑 구경하고 왕릉 내부까지 들여다보니, 어린아이 눈에신비로움으로 가득 찼다.


커다란 굴뚝에서 뿜어 나오는 희뿌연 연기가 하늘 높이 오르는 모습그 어떤 문화재 보다 더 라운 구경거리였다.


요즘 같으면 대기오염 문제로 고발당하고도 남을 일이지만, 당시에는 국가 주도로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을 펼치던 시절이라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모습은 사회교과서 표지 모델이 될 정도로 경제성장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불국사를 돌아볼 때는 다보탑 앞에서 기념사진도 한 장 찍었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이라 카메라를 가진 학생은 아무도 없었지만, 선생님 중 한 분이 카메라를 준비하신 덕분이었다.


그러나 사진이 공짜는 아니었다. 수학여행이 끝나고 학교에서 값을 치른 후에야 사진을 받을 수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삼 사십 원 정도 했던 것 같.


선생님께서는 "개인 사진은 안되고 세 명 이상 단체 사진만 찍어 준다"라고 하셨고, 나는 급히 세 명을 모아 기념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었다.


하기야 요즘 세상에도 골프 한 번 치려면 최소 3명 이상 인원수를 채워야 입장을 시켜준다. 가끔 한 번씩 골프장 가는 주말 골퍼들은 선수 4명 맞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사진 한 장 찍어 주는데, 3명씩이나 인원을 맞춰 오라고 말씀하시니.... 왜 그러셨을까.

세월이 흘러 사진 속 아이는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고, 기차 대신 승용차를 몰고 이곳을 다시 찾았다.

손에는 성능 좋은 카메라가 장착된 최신 핸드폰이 들려 있다.

삼릉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오래전에 방영되었던 '선덕여왕' 드라마 촬영지였다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선덕여왕과 미실 역으로 나왔던 두 여배우 사진이 드라마를 다시금 생각나게 한다.


삼릉탐방지원센터에서 경주 남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숲길로 몇 발짝 들어서니 큰 무덤이 소나무 사이로 보인다. 왕릉 치고는 그리 큰 규모가 아니지만 3기의 무덤이 나란히 선 모습이 특별해 보인다. 시대를 달리 한 왕들이 어떤 사연으로 이리도 가깝게 자리를 잡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잠시 생겼지만, 찌는듯한 무더위 때문인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 그냥 흘려버린다.


계곡을 따라 조금 오르니 머리 없는 불상이 하나 나타난다. 이 불상은 어쩌다가 머리를 잃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잠시 계곡을 따라 오르며 마애불과 석불들이 몇 번 더 보인다. 불교 유물에 대해서 문외한이지만 야트막한 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은 이런 유물을 많이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산 전체가 노천박물관이라고 했던 게 괜한 말은 아닌 듯싶다. 찬란했던 신라 불교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산이다.


해발고도가 높아지니, 아래쪽 경치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형산강 줄기 따라 넓게 펼쳐진 들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들판에 꽉 들어찬 짙은 벼가 여름이 깊어가고 있음을 말해 주는 듯하다. 바둑바위에 올라서니 저 멀리 경주시내까지 눈에 들어온다. 천년의 세월을 호령했던 도시의 옛 명성은 흔적 없고, 평범한 시골 도시의 풍경으로 비친다.

  

너른 바위 앞으로 탁 터진 전망이 일품이지만, 바위에서 반사되는 열기로 인해 오래 머물 수 없어 얼른 그늘로 몸을 피한다.

다시 정상 쪽으로 길을 잡으니 이내 國立公園 金鰲山이라 적힌 정상석 앞에 이른다.

정상석

그 유명한 명곡 "신라의 달밤"이라는 노래가사에 나오는 금옥산이 바로 이 산이 아닌가.

신라의 화랑도나 아리따운 궁녀들의 흔적은 없 정상석 우뚝 서 있다. 수풀이 사방을 빽빽이 틀어막아,  없고 바람 한 점  게 아쉽다.


정상 인증을 급히 마치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하산길로 접어든다.

내려가는 코스는 용장사지를 지나 용장골로 내려갈 생각이다. 능선길 지나고 큰 임도길 잠시 걷고, 용장사지 안내목 따라 오솔길로 내려선다. 한적한 길을 따라가니 잠시 후 벼랑 위에 우뚝 선 용장사지 삼층석탑이 눈에 든다.


벼랑 끝 바위 위에 서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자연 암반을 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탑이 세워져 있다. 어떻게 이런 곳에 탑이 세워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치 선정이 탁월하다.

용장사곡 삼층석탑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절이지만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7년간 머무르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저술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의 제목에 나타난 金鰲라는 말도 이곳 금오봉(金鰲峰)에서 유래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경주 남산은 서울의 남산처럼 수도의 남쪽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도성의 백성들이 많이 찾았을 것이고, 거칠지 않아 백성들에게 늘 편안함을 선물했을 것이다.


남산의 명성이 신라 때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산 위로 보름달이 두둥실 떠가는 모습은 꽤나 멋질 것이다. 언제 한번 불국사 종소리와 함께 신라의 달밤도 경험해 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콩밭 매는 아낙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